[광화문]뜨거운 남자

머니투데이 정희경 금융부장 2008.07.16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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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도, 주주총회 시즌도 아닌데 '인사편지'를 종종 받습니다. 금융회사를 경영하다 갓 물러났거나 새로 사령탑에 오른 분들의 퇴임 및 신임 인사입니다. 유례를 찾기 힘든 금융공기업 기관장의 일괄 사표 여파이기도 하지만 e메일에 익숙해져 버린 요즘 받는 편지는 언제나 신선합니다.

이 중 이종휘 우리은행장의 편지는 여러 번 꺼내 읽도록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인사말 마지막에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 전문을 남겨서입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평소 시를 좋아하는 이 행장이 의례적인 인사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덧붙였다고 합니다. 사실 아주 짧은 이 시는 경영자들도 자주 읊습니다. 그만큼 각별히 해석되는 듯 합니다.



LIG손보의 김우진 사장은 지난 연말 연탄배달 봉사활동을 하면서 이 시를 인용했습니다. 그는 "고객과 사회에 뜨거운 그 무엇이 될 수 있도록 모두 함께 봉사의 리더십을 발휘해달라"고 직원들에게 당부했습니다.

연탄은 시인의 표현처럼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삶이란 나 아닌 다른 이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연탄 한 장)이라는 지적에는 그저 고개가 숙여집니다. 나아가 온 몸을 던져 누군가의 차가운 방을 데운 후 차가운 재로 남은 연탄을 더이상 마주하기 어려워집니다.

국제유가가 계속 치솟으면서 '제3차 오일쇼크'라는 무시무시한 헤드라인이 물음표(?)를 달고 나올 정도로 경제 걱정이 커지고 있습니다.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10년 전 외환위기와 비교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시 금 모으기 운동에서 보여준 국민들의 '뜨거운' 연대가 아직 유효하다면 이번 위기는 미리 막을 수 있다고 봅니다.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 은행권도 시련의 시기에 접어듭니다. 호황기에 늘어난 대출이나 투자가 부실해지지 않도록 제대로 관리하면서 동시에 한계상황에 처한 기업들에는 갑자기 '우산'을 뺏지 말라는 주문을 이곳저곳에서 받습니다. 더구나 인수·합병(M&A) 경쟁이 곧 본격화할 조짐이어서 외형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딜레마에 빠지는 셈이죠.

"(우리은행이) 우리나라 1등 은행의 꿈을 넘어 글로벌 뱅크라는 새로운 꿈을 향해 가고 있다"고 전한 이 행장은 기업가치뿐 아니라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의 건전한 성장을 위해 보다 깊이 고민하고 실행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연탄의 의미를 끄집어낸 그의 속내를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는 "여러분 모두에게 뜨거운 사람으로 남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인사말을 끝냈습니다.



안도현 시인은 "너나 없이 연탄을 때던 유년시절에는 창고 가득 연탄이 쟁여 있으면 마치 큰 부자가 된 듯 그렇게 든든할 수 없었다"고 회고한 바 있습니다. 연탄을 갈아본 적이 있다면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추억입니다. 흔들리는 경제에 '뜨거운' 은행들이 있다면 든든하겠지요. 우리은행을 비롯해 한국경제에 뜨거운 그 무엇이 되려는 금융회사에 성원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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