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경 차관, 십자가 대신 메고 퇴장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08.07.0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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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환율 등 문제 최종 책임자", 주위선 "희생양"

최중경 차관, 십자가 대신 메고 퇴장


외환시장의 '최틀러'가 떠난다. 최중경 기획재정부 제1차관(52세, 행시 22회, 사진) 얘기다. 7일 개각에서 강만수 재정부 장관은 자리를 지킨 반면 그의 '오른팔'인 최 차관만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지난 3월1일 재정부 차관에 취임한 지 4개월여 만이다.

올 초 원/달러 환율을 급등케 해 수입물가 급등을 초래했다는 게 경질의 이유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환율 등의 기조 설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환율 문제의 최종 책임자는 차관"이라고 말했다.



최 차관은 지난 3월26일 "환율이 급격히 오르는 것보다 급격히 내리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며 환율 하락에 비해 환율 상승을 선호한다는 뜻을 시사했다. 최 차관의 이 같은 발언은 당시 환율 상승세에 힘을 보탰다.

2004년 옛 재정경제부(현 재정부) 국제금융국장 시절 원/달러 환율의 하락을 막기위해 무소불위의 개입을 단행하며 '최틀러'라는 별명까지 얻은 최 차관이라는 점에서 환율시장은 그의 발언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다.



여기에 국제유가 급등, 경상수지 적자 등으로 달러화 수급사정까지 빠듯해지면서 최 차관 취임 당시 950원선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최근 1050원선까지 치솟았다.

환율 급등의 영향으로 5월 수입물가는 전년대비 45%나 뛰어올랐다. 달러화 기준 수입물가 상승률이 28%에 불과했음에 비춰 나머지 17%는 환율 상승에 따른 것이었다. 환율이 폭등에 따라 환헤지 통화옵션 '키코'(KIKOㆍKnock-In, Knock-Out)에 가입했던 기업들도 약 2조5000억원의 손해를 입었다.

이에 대해 재정부 직원들은 최 차관이 환율 급등과 수입물가 상승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재정부 관계자는 "최근 환율이 크게 오르긴 했지만 최 차관을 비롯해 정부가 끌어올린 것이 아니라 국제유가 급등, 미국 신용경색 위기 등 수급상 '바람'이 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 차관의 퇴진으로 옛 재무부 이재국 라인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세대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게 됐다. 재무부 이재국을 거쳐 비교적 최근 재경부 금융정책국, 국제금융국에서 일가(一家)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 변양호 보고펀드 대표(19회), 김석동 전 재경부 차관(23회), 최 차관이 모두 관직에서 물러난 셈이다. 적어도 이들 중에서 장관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렇다.

관료로서 최 차관은 '용장'(勇將)에 가까웠다. 늘 확신에 차 있었고, 뛰어난 추진력을 보였다. 자신을 알아주는 주군(主君)에게는 충성을 바쳤다.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상임이사로서 로버트 졸릭 IBRD 총재의 신임을 한몸에 받고 있던 중에도 올 1월 강 장관의 부름을 받고 한걸음에 달려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합류했다.

최 차관은 강 장관의 '복심'(腹心)이었다. 강 장관의 재무부 국제금융국장 시절 사무관으로, 재경원 차관 시절 금융협력과장으로 함께 일했다. 강 장관이 자신의 저서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에서 '가장 헌신적인 공무원'으로 꼽은 인물도 최 차관이었다. 최 최관의 이번 퇴진도 자신을 인정해주는 강 장관을 위해 최 차관이 대신 십자가를 졌다는 게 주변의 관측이다.

한편 '오른팔'을 잃은 강 장관이 앞으로 얼마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를 놓고 우려가 많다. 장관이 직접 나설 수 없는 분야에서 물밑 조율 등을 통해 장관의 의중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차관의 일이다. 가장 민감하면서도 중요하다는 인사 문제가 대표적이다.

재정부의 한 간부는 "최 차관을 환율 논란의 희생양으로 삼은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며 "최 차관이 퇴진하더라도 장관의 리더십과 정부의 경제정책이 훼손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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