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한 듯한 분위기를 풍기며 지난달 서울시향과 함께 한 바시메트의 연주는 비올라를 죽음이 연계돼 있는 철학적 악기라고 그가 말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게 했습니다.
마르타 아르헤리치. 그녀의 이름 앞에는 '피아노의 여제'라는 수식어가 붙지요. 엄청난 파워와 테크닉으로 관객을 압도합니다.
지난 5월 서울시향과 함께 한 협연에서 그녀는 파워풀하고 카리스마가 넘쳤지만 동시에 한없이 겸손하고 소박했습니다. 여제라기보다 수줍음 많은 시골 할머니였습니다.
☞ 서울시향이 연주하는 브람스의 '대학축전 서곡' 듣기
서울시향의 급격한 발전은 3년 전 이팔성 대표의 취임과 함께 시작된 재단법인 전환과 거장 정명훈과 세계적 작곡가 진은숙의 영입, 실력 위주의 단원 물갈이와 혹독한 연습 등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문화기업'으로서 변신도 놀랍습니다. 연주횟수와 관객수, 공연수입, 재정자립도 등에서 국내 다른 오케스트라와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앞서 갑니다.
그래서인지 예전의 금융 전문 경영인 시절에 비해 그는 훨씬 더 부드러워졌고, 더 담백해졌습니다. 더 겸손해졌고, 더 창의적으로 변했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더 넓어졌습니다. 정치적 편향으로 일부는 그에게 여전히 'MB맨'이라는 딱지를 붙이려 들지만 우리금융 식구들도, 금융계도, 더욱이 시장도 그에게 신뢰와 함께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낙하산이라고요? 외압이 있었다고요? 그는 휴대폰 하나 달랑 들고 조직에 맞서 중도성향의 사외이사들을 설득한 승부사입니다. 고독하게 이겼기에 회장 선임 직후 포용을 얘기하고 포수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입니다. 이번에 뜻을 이루지 못하면 시장으로 돌아가 자산운용업에 투신키로 배수의 진을 치고 그는 도전했습니다. 한때 가졌던 정치나 관가에 대한 미련은 이미 버렸습니다. 낙하산 인사니, 시장의 신뢰가 없다느니 하는 말은 그에 대한 모독이고 모욕입니다.
#지난 주말 촛불시위 속에 서울시향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연주회가 열렸습니다. 촛불시위 속에 듣는 '비창'은 더욱 슬펐고, 촛불시위 속에 듣는 '황제'는 더없이 화려하고 웅대하고 당당했습니다.
이팔성·황영기 회장이 김승유·라응찬 회장과 함께 끌어갈 한국의 금융산업이 황제처럼 웅대하고 당당하기를 기원합니다. 한국금융사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절로 기억되면 더 좋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