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밤은 낮보다 재밌다

머니투데이 박종진 기자 2008.07.05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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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이슈]2달을 넘긴 촛불집회, 갖가지 얘기들이 넘치고 있다

5월2일 시작된 촛불시위가 60일을 훌쩍 넘겼다. 횟수로도 60회에 육박한다. 시위현장에서는 갖가지 얘깃거리가 쏟아졌다.

특히 지난주에는 또다시 '물대포'가 등장하고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경찰과 시위대 간에 난투극이 벌어지는 등 '폭력'이 도마에 올랐다. 촛불시위가 순수성을 잃고 정치투쟁으로 변질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30일부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시국미사 형식으로 '촛불'에 가세하는 등 성직자들이 나서면서 다행히 충돌은 사라진 상태다.

이 밖에도 시위 현장에는 '큰 주제'에 가려진 다양한 얼굴들이 있다. '폭력'이나 '투쟁의 목적' 같은 무거운 주제가 다 설명할 수 없는 소소한 면면도 많다.



ⓒ이명근 기자ⓒ이명근 기자


◆'시위천재'의 비결은 반복학습?

시위대가 행진을 시작해 경찰의 차벽 저지선을 만나면 경찰버스에 밧줄을 매달아 끌어당기는'줄다리기'가 펼쳐진다. 지난달 21일부터는 모래주머니를 이용한 '국민토성' 쌓기도 시작됐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이 작업에 시민들은 어느새 '선수'가 다 됐다.



6월25일~26일 새벽. 세종로사거리 서대문방향 인근 공사장에 있던 모래주머니 더미를 하나하나 시위대가 날랐다. 최대 100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인간 띠를 만들어 모래주머니를 나르는 모습은 '위법성' 논란을 넘어 그 자체가 장관이었다. '노력' 덕분에 일부 시위대는 '국민토성'을 발판 삼아 경찰 저지선을 넘어가기도 했다.

버스 끌어내기도 노련해졌다. 줄을 연결하면 누군가가 불어대는 호루라기 소리에 호흡을 척척 맞춘다. 그때그때 당기는 방향도 바꿔서 버스가 조금이라도 더 쉽게 움직이도록 한다. 나이 지긋한 아저씨부터 청년, 앳된 중고생에 아줌마들까지 혼연일체다.

마침내 25일 밤에는 세종로사거리 인근 금강제화 앞 골목길에서만 경찰버스 4대를 끌어내는 기염을 토했다. 버스를 당길 때면 '앞으로 앞으로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이란 동요도 경쾌하게 나온다.


ⓒ이명근 기자ⓒ이명근 기자
◆물대포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입담은 덤

'이제 그만 지켜보자'는 여론도 만만치 않지만 적어도 시위에 나온 사람들은 다르다. 결연한 의지만큼이나 대담했다.

물대포가 처음 나왔던 5월31일~6월1일 시위 때는 새벽 쌀쌀한 날씨에 "온수, 온수!"를 외치기도 했지만 어느덧 그런 말도 필요 없이 비옷은 시위 필수품이 됐다. "준비됐으니 뿌려라"고 말하기도 한다.

경찰의 해산경고방송에 대응해 시위대의 '맞장방송'도 흥미를 끈다. 경찰이 "살수하겠다"고 하면 "우리들은 천민(천민민주주의 발언을 비꼼)이라 씻을 돈도 없으니 어서 목욕시켜 달라"고 맞선다. 다시 경찰이 "폭력행위에 대해 반드시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엄포를 놓으면 "시민들 의견 묵살하는 이명박 정권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맞받는다.

경찰도 약이 올라 22일 새벽에는 방송에 대고 "도망가지 말고 그 자리에 그대로 계시라. 다 검거하겠다", "아직도 할 말이 남았느냐"고도 했다.

↑ 총검술 시범을 보이는 '예비군 부대'↑ 총검술 시범을 보이는 '예비군 부대'
◆아무리 급해도 '아저씨'…군대의 추억도

26일 새벽. 25일만에 물대포가 등장하고 세종로사거리에서 대규모 충돌이 빚어졌다. 시위대와 전경 수천명이 도로에서 엉켜 부상자가 속출한 그 긴박한 상황 중에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열 맞춰요", "아저씨! 앞으로 나가지 말아요" '고참' 전경이 동료 전의경들에게 외치는 소리였다.

급박한 상황에서 전경 중대끼리 서로 뒤섞였던 것. 군대와 마찬가지로 이들도 병사끼리는 '중대'가 다르면 입대날짜에 따라 서열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저씨'로 불렀다. 아무리 급해도 '원칙'은 지켜졌다.

26일 오전 6시. 밤샘시위를 하던 '예비군부대'는 시위대들 앞에서 나무 막대기로 총검술 공연도 했다. 주위에 앉아 대치 중이던 전의경들에게 '시범'을 보여준다는 의도도 포함됐다. '예비군 부대'가 나름 멋진 동작으로 "찔러 베어 올려쳐"를 연발할 때마다 수백명의 시민들은 환호했다.

ⓒ홍봉진 기자ⓒ홍봉진 기자
◆사제단의 유머…"이왕 친거 제대로 크게 하지?"

거리로 나온 사제들은 폭력은 막고 시민은 웃겼다. 시국미사 중 승리의 조건을 알려준다며 "질긴 놈이 이긴다"고 말하는 등 엄숙함보다는 친근함을 줬다.

지난달 30일 김인국 신부는 "우리는 저들(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행진할 것"이라고도 말해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1일에도 진행을 맡은 김 신부는 "박수 세번 시작! 이것도 못하면 대통령이 얕잡아 본다"고 해 시민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시국미사 첫날 집전을 한 전종훈 사제단 대표는 중간에 성명서 낭독이 끊기고 박수가 나오다 말자 "이왕 친거 제대로 크게 하지?"라고 말해 서울시청 앞 광장을 박수소리로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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