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야당, 조건 없는 등원(登院)해야

류병운 홍익대 교수(국제법) 2008.07.03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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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시평]야당, 조건 없는 등원(登院)해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우리가 2000년 전 아테네 이후 처음으로 수천만 국민의 참여와 관심 속에 다시 직접민주주의라는 엄청난 경험을 하고 있다”라고 촛불시위를 극찬하면서 이명박 정부가 이에 순응하는 것이 실용주의라고 했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은 한 달 이상 공전중인 여대야소의 18대 국회가 원구성도 못한 채 아예 길거리 민주주의로 대체되어 버렸으면 하는 개인적 바램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주도세력의 상당수가 반미, 친북적 경향을 가진 인사들이고 왜곡방송이 시위를 부추겼으며 경제난에 허덕이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시위의 장기화에 염증을 느낀다는 점에서 이 촛불시위를 과연 ‘직접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촛불시위에 대해서는, 디지털 포퓰리즘에 고무된 ‘천민민주주의’라는 평가와 ‘이성이 무시되는’ 시위라는 외국 언론 보도도 눈에 띈다.
 
노회한 김 전 대통령이 말하는 ‘직접민주주의’는 대중인기주의, 즉 포퓰리즘과 상통한다. 포퓰리즘은 국민들의 직접적인 목소리인 ‘현시적 선호(顯示的 選好)’에 영합하여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정치성향이다.



(이를 ‘페론주의’라고도 하는데, 과거 아르헨티나 대통령 페론이 합리적 국가경제정책을 외면한 채, 빈곤층에 대한 퍼주기와 가진 자에 대한 적개심의 고취를 통하여 확고하게 결집된 지지층을 발판으로 정권을 유지한데 기인한다.)
 
언뜻 보기에 국민들이 현재 원하는 바를 추종하는 포퓰리즘은 민주국가에서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원칙에 충실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국민들의 ‘현시적인 선호’가 항상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촛불시위가 MBC ‘PD수첩’의 왜곡보도나 반미감정으로 증폭된 예에서 보듯 국민들의 ‘현시적인 선호’는 그릇된 정보나 민족적, 국가적, 인종적, 지역적, 계층적, 종교적 편견 등 비이성적 선호들에 근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현시적 선호’를 그대로 수렴하여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직접민주주의 방식은 많은 결함으로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종종 국민의 ‘현시적 선호’에 반하더라도 필요한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국민 대부분이 핵발전소를 반대하더라도 미래의 에너지 수급상황을 고려할 때 건설이 불가피한 경우 등이다.

그렇다고 1930년 이후 구(舊)소련을 단기간 내에 세계 최강국으로 끌어올렸던 스탈린 시대처럼 국민들의 ‘현시적인 선호’를 탄압하면서 상시 전체주의적 효율성만을 추구해서도 안된다.


국가가 알아서 원하는 바를 실현시켜 주겠으니 국민들은 입 다물고 순응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은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악마(메피스토펠레스)가 “너의 영혼을 내게 맡기면 행복하게 해주겠노라”라는 제안과도 흡사한 민주주의의 포기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국민의 선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통합하여 국가정책에 반영해야 하는가는 난해한 민주국가 방정식이다.
 
오늘날 대의제도는, 국민선호의 통합과정으로서의 직접민주주의 방식의 비효율성을 극복해야 함은 물론, 비이성적이거나 비합리적인 ‘현시적 선호’를 여과하여, 정말로 국익과 국민후생을 극대화하는, 국민의 ‘진정한 선호'를 파악하는 장치로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그 대의제도의 중심에 국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야당 의원들이 아직 시작도 못한 18대 국회에 등원을 거부하면서 서울 도심에서 심야까지 지속되는 불법 시위에 부화뇌동하는 것은 그 본분을 망각한 것이다.

민주당이 등원조건으로 내세우는 ‘가축전염병예방법’의 개정 내용도 국내법으로 국제법을 뒤집겠다는 발상이며 또한 미국산 쇠고기와 국산의 차별을 금지하는 GATT 제3조에 저촉되는 것이다. 야당 의원들은 촛불포퓰리즘에서 벗어나 조건 없이 국회에 복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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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MT시평의 논지는 필자의 입장이며 머니투데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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