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뷰]이럴 거면 촛불을 끕시다

머니투데이 박형기 통합뉴스룸 1부장 2008.06.27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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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뷰]이럴 거면 촛불을 끕시다


연이틀 시위가 폭력으로 얼룩졌습니다. 25일부터 27일까지 광화문 일대는 청와대로 가려는 시위대와 이를 막으려는 경찰 간의 정면충돌로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시민과 전경이 다쳤습니다.

그동안 비폭력 평화집회는 촛불시위의 트레이드마크였습니다. 기자는 지난 6월 10일 수십만 명이 모였던 광화문 집회에서 단 한명의 부상자도 나오지 않은 것을 보고 한국 민주주의가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이 칼럼을 통해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기자는 이른 바 명박산성을 무력화시킨 시민들의 철저한 비폭력 평화집회를 보고 2002년 월드컵 이후 처음으로 한국인임이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고시 강행 방침을 밝힌 이후 처음 벌어진 25일 시위는 폭력으로 얼룩졌습니다. 청와대로 가려는 시위대와 이를 막는 전경이 밤새 백병전을 방불케 하는 난투극을 벌였습니다. 26일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평화적 촛불시위가 폭력시위로 변질됐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됐습니다.

도발은 정부쪽에서 먼저 했습니다.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고시를 강행했으며, 시위대를 무차별 연행하면서 시위대를 자극했습니다. 시위대는 평화 시위의 원칙을 지키고 싶었으나 정부가 고시를 강행하고 시위대를 무차별적으로 연행하는 마당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위대가 정부의 페이스에 말려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정부는 추가협상으로 촛불시위의 기세를 일단 꺾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 추가협상 이후 일반 시민의 시위 참여는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저희 머니투데이는 추가협상 전과 후에 각각 똑같은 온라인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촛불집회를 계속해야 하느냐는 설문이었습니다. 추가협상 전에는 90%가 촛불시위를 계속해야 한다고 대답했으나 추가협상 이후에는 64%가 촛불시위를 계속해야 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추가협상으로 "이제 할만큼 했다", "정부를 믿어보자"는 여론도 적지 않게 생겨난 것 같습니다.

촛불의 기세를 어느 정도 꺾었다고 생각하는 정부는 이제 시위대를 강경 진압하는 방법으로 시위대의 폭력성을 부각시켜 그동안 촛불시위를 지지했던 시민들로부터 시위대를 고립시키려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초 시민들이 촛불 시위대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것은 명분과 함께 비폭력을 견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위는 25일을 기점으로 평화시위가 아닌 폭력시위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촛불에 우호적이었던 시민들이 시위대에 이전 같은 애정을 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기자는 평화시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상주의자는 아닙니다. 오히려 냉철한 현실주의자에 가깝습니다. 이번 싸움은 결국 누가 국민의 마음, 즉 민심을 얻느냐에 따라 결판날 것입니다. 그동안 국민들이 촛불시위대를 전폭 지원했던 것은 시위대가 명분과 도덕성에서 정부를 압도했기 때문입니다. 시위대는 스스로 폭력을 제어하는 방법으로 정부의 공권력을 무력화했습니다. 시위대는 물대포를 쏜 경찰을 향해 물총을 쏘는 등 한결 수준 높은 대응으로 공권력을 무력화하는 것을 넘어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시위가 폭력화하면서 시위대는 가장 중요한 도덕성에 흠집을 내고 있습니다. 시위가 폭력화 하면서 일반인의 시위 참여가 적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철저한 비폭력 평화집회 만이 민심을 시위대 편에 묶어 두는 방법일 것입니다.

지금은 정부와 시위대가 민심을 얻는 게임을 벌이고 있습니다. 시위대가 폭력시위를 계속한다면 민심은 정부가 아니라 '촛불'을 버릴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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