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 급매물 아니라면 좀 더 기다리시죠

머니투데이 문성일 기자 2008.06.13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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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강남 재건축 살까, 말까"

올 7월 가족들과 해외 연수를 계획하고 있는 강수남(가명, 40)씨는 살고 있던 일산신도시 아파트를 처분하고 최근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5단지 112㎡(34평형)를 매입했다. 강씨가 지불한 매입금액은 10억8000만원으로 현 시세에 비해 7000만원 가량 싸다.

강씨가 이 아파트를 사들인 이유는 이렇다. 우선 현재 초등학교 3학년과 1학년인 아이들의 교육을 감안해 2년간의 연수를 마치고 돌아오면 학군이 상대적으로 좋은 곳으로 옮기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또 재테크도 감안했다. 즉 현재는 재건축 추진단지들이 연일 호가가 빠지고 있는 등 약세를 보이고 있지만 연수기간이 끝나는 시점에선 다시 강세로 돌아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매입 당시 강씨는 경매도 고려했지만 시간도 없고 왠지 찜찜하다는 느낌이 들어 급매물을 잡는 쪽으로 결정했다. 솔직히 부담이 안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2년간 전세를 놓고 일부 대출자금에 대한 이자를 충당할 수 있다고 판단해 일(?)을 저질렀다.



강씨의 결정은 과감했지만 요즘 강남권 재건축 대상아파트를 매입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 투자자들의 고민이 상당하다. 약세가 이어지는 현 장세를 볼 때 과연 터닝포인트가 언제일지 날씨만큼이나 예측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감한 베팅이 오히려 화를 부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 이어지는 내림세, 끝은 어디인가

각종 규제로 인해 사업 추진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재건축 아파트값의 하락세 폭이 최근들어 점차 커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정보협회 통합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지난 한주에만 강남권 재건축단지 매매값은 -0.21%를 기록, 일반아파트 하락률(-0.06%)에 비해 3.5배에 달했다. 본격 내림세가 진행된 3월부터 감안하면 하락률이 2.45%에 이른다. 이는 같은 기간 서울 전체 재건축단지 매매가 하락률(-2.03%)보다 0.42%포인트 높다.

단지별로는 강동구 둔촌주공1단지 82㎡ 매매호가가 최근 한 달새 1억원 이상 빠져 현재 8억5000만원까지 밀렸다. 강남구 개포동 개포시영 62㎡는 4000만원 이상 호가가 내렸다.



이처럼 재건축아파트값이 맥을 못추는 원인 가운데 하나는 조합원의 입주권 매도. 재건축 사업시행인가 시점에 2주택자였던 집주인들이 양도소득세 중과를 피하기 위해 매물을 내놓고 있다. 입주권은 양도세가 36%이지만 입주 후에는 2주택자로 간주돼 50%나 내야 하기 때문이다.

잠실 일대 대표 주택형인 109㎡이 1억~1억5000만원 가량 매매호가가 빠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서초구 반포에선 142㎡ 이상 주택형의 경우 최대 2억원 이상 하락했다. 이 같은 재건축 약세는 기존의 인근 아파트값도 떨어뜨리고 있다. 강동구 암사동 한강현대 109㎡은 1000만원 이상 떨어졌고 서초구 잠원동 반포우성 125㎡도 불과 1~2주새 2500만원이나 급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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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쏟아지는 입주물량, 추가하락 불가피

이처럼 약세가 멈추지 않고 있지만, 대기 중인 입주물량이 산적해 가격 하락은 당분간 더 지속될 것이란 지적이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강남ㆍ서초ㆍ송파ㆍ강동 등 서울 강남4구의 올해 입주물량은 지난해보다 127% 늘어난 약 2만9000여가구. 이들 4개 자치구의 기존주택이 32만가구인 점을 감안하면 9% 이상 늘어나는 것이다.



특히 잠실 일대의 경우 올 7월과 8월에만 1만8000여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주변 단지들이 '가격 하락'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하는 대목이다. 대규모 저밀도단지 재건축이 진행되고 있는 서초구 반포동 일대에선 올 연말까지 5800여가구가 입주할 계획이다.

◆ 추가부담금 '공포'

상황이 이처럼 좋지 않지만 더 나쁜 소식은 별다른 돌파구가 없다는 것이다. MB정부 출범으로 잔뜩 기대했던 용적률 제한을 비롯한 각종 규제 완화가 여전히 요원하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산쇠고기 사태로 정신없는 MB정부가 당장 재건축과 같은 부동산 문제에 신경쓸 여력이 없어 보인다.



이런 가운데 악재는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추가부담금이다. 누릴 수 있는 시세차익보다 더 많은 부담금을 내야 하는 상황까지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배보다 배꼽이 큰 셈이다.

송파구 가락동 가락시영1차 42㎡의 경우 올 초 5억6500만원이던 시세가 4억9000만원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최근 결정난 추가 부담금이 예상치를 크게 웃돌아 기대수익이 줄어서다. 재건축조합이 추정한 부담금 내역에 따르면 1차 42㎡ 조합원이 110㎡(33평형)을 신청할 경우 추가로 내야할 부담금이 2억4894만원에 달한다. 이는 3년 앞서 재건축을 진행한 잠실2단지의 부담금에 비해 3배 가량 많다.

지난 4월 초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단지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이처럼 많은 부담금이 산출되면서 시공사 계약을 해지하는 사업장도 속출하고 있다. 이래저래 비용부담은 늘어나고 새 아파트로의 입주는 요원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고민은 시작됐다

그렇다면 재건축단지를 사야 할까 말아야 할까.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선 정확한 예측이 필요하다. 즉 현재의 대세하락의 종착점을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신이 아닌 이상 이를 맞춘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과감히 투자에 나설 계획이 있는 투자자라면 이어지는 급매물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매물은 상당수 재건축단지에서 예년에 비해 늘고 있다. 사업 추진이 멈춘 둔촌이나 고덕, 개포 주공 단지들의 경우 지난해보다 매물이 30~40%씩 늘었다는 게 중개업계의 설명이다.



이처럼 매물이 늘면서 다른 물건에 비해 가격을 더 낮춘 급매물도 많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 시점에선 이들 급매물 가운데 주변 시세보다 적어도 15% 이상 싼 물건을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추가 하락을 감안할 때 투자손실을 보지 않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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