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러시아 오일 관련주들은 국제유가 상승이라는 호재를 이미 충분히 반영하고 있습니다.”(기준환 이사)
JP모건자산운용코리아의 기준환 이사는 5월29일 국제유가와 러시아펀드 수익률의 상관관계를 묻는 기자에게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들려줬다. 기 이사는 “러시아 에너지 관련주들은 이미 충분히 급등했다”며 “JP모간은 현시점에서 에너지업종에 중립적 견해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 이사의 답변은 한마디로 ‘러시아펀드=고유가 수혜‘라는 일반투자자들의 정서와 다소 거리를 두고 있다. 단순히 국제유가의 추가 상승만 기대하고 러시아펀드에 투자했다가 자칫 크게 실망할 수 있다는 얘기다.
◆ 원주 비중이 가장 높은 러시아 펀드
JP모간의 러시아펀드는 지난해 9월17일설정됐다. 5월27일 기준으로 설정이후 수익률은 15.5%에 달한다. 연초 이후 수익률은 8.2%를 나타냈다. 원화투자금액에 대해 100% 환헤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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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펀드는 이름보다 투자대상이 넓다. 러시아 뿐만 아니라 독립국가연합(CIS)에 속한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의 기업에도 투자한다. 이들 국가의 기업들도 주로 러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다. 러시아 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다.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 기업 등 러시아 펀드의 투자대상은 1300여개. 러시아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주식과 이들 주식에 기반해서 발행된 DR(주식예탁증권)이다. 원주와 DR의 투자 비중은 비슷하다.
기 이사는 “국내에서 운용중인 러시아펀드 중에서 원주 비중이 가장 높다”고 밝혔다. 이는 JP모건은 글로벌 자산운용사 중 유일하게 러시아에 현지사무소를 두고 있어 현지사정에 정통하기 때문이라는 것. 또 다양한 정보를 토대로 현지 펀드매니저인 올레그 비률로프가 DR 미발행 업체중에서 성장 전망이 양호한 종목을 발굴, 투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올레그 비률로프는 1994년부터 JP모간 러시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으며 신흥시장 및 러시아 주식형펀드를 운용한다. 기업실적 대비 저평가 종목이나 성장가능성 높은 종목을 발굴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게 JP모간 내부 평가다.
◆오일주 비중 축소, 금융비중확대
러시아 펀드의 또다른 특징은 벤치마크 대비 에너지업종의 비중이 낮다는 점이다. 5월23일 현재 러시아펀드는 에너지 업종에 19.4% 투자하고 있다. 벤치마크인 ‘MSCI 러시아 10/40’(37.8%)보다 18.4%포인트 적다.
기 이사는 에너지업종의 비중축소 이유를 “올들어 러시아 에너지관련주들의 급등을 촉발시킨 감세발언 등 호재는 이미 충분히 반영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월 이후 최근까지 석유회사에 대해 감세혜택을 주겠다는 정부 고위당국자의 잇단 발언으로 에너지 관련주들이 급등, 현 주가는 고평가 상태라는 게 JP모간의 판단이다.
대신 금융과 음식료 등 내수소비재의 주가전망을 좋게 봤다. 이들 업종이야말로 대표적인 오일달러 수혜주라는 게 JP모간의 판단이다. 오일 달러를 통해 소득이 증대한 러시아인들이 선진국 수준의 소비성향을 보여 이들 업종의 성장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러시아연방통계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러시아의 소비지출은 1462억달러로 2006년 같은기간 대비 21.6% 증가했다.
이 같은 판단에 따라 러시아 펀드는 이들 업종의 비중을 벤치마크보다 많이 편입했다. 5월23일 현재 금융(11.3%→18.0%) 음식료(1.5%→9.1%)는 벤치마크보다 비중을 많이 두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최대 리스크
러시아는 최근 기준금리를 10.25%에서 10.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신흥시장중에서 최고수준인 연 14%대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조치다.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은 러시아투자자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위험요인이라고 JP모간은 인정한다.
JP모간은 최근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인플레이션이 연 14%로 신흥시장장중 최고수준”이라며 “러시아 중앙은행은 이번 기준금리 인상 이후에도 서너차례 기준금리와 지급준비율을 인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중장기적으로는 통화절상을 통해 물가를 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같은 금리인상은 러시아 증시에 단기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하지만 중장기 성장을 위해 단기긴축은 불가피하다는 게 JP모간의 입장이다. 기 이사는 "향후 계속될 금리인상은 러시아 증시에 악재인 것은 분명하다"고 인정하면서도 "하지만 금리인상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강한 만큼 금리인상 충격을 덜 받는 업종에 투자하는 것으로 시장에 대응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금리인상을 호재로 받아들이는 소매와 농업의 비중을 늘리고 금융업종에 선별적으로 투자하겠다는 얘기다. 즉 실질금리가 -5%대에 달하고 있어 러시아 소비자들이 저축보다는 소비를 늘리고 있어 소매와 농업업종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금융업종은 대출비중이 낮은 국책은행 등으로 투자대상을 좁혀 리스크를 관리하겠다는 복안이다.
◆유동성도 예의주시 대상
유동성도 예의주시해야 할 대목. 러시아의 시가총액이 한국수준에 불과해 펀드투자자들이 대량 환매에 나설 경우 유동성 위험을 배제하기 힘들다. 특히 러시아 증시는 국내처럼 전자결제가 아니라 현물결제이기 때문에 유동성 문제가 잠복해 있다는 게 펀드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실제 매매체결후 주권을 인수받는데 한달이상 걸리는 종목도 있다.
기 이사는 “JP모간은 현지 사무소를 통해 러시아 증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지금보다 4배이상 자금이 유입돼도 환매자금을 마련하는데 문제가 없게 유동성을 관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07년 말 러시아 증시의 시가총액은 1조100억달러로 한국증시와 비슷한 규모다. 상장종목수는 1300여개이며 주요 증권거래소로는RTS(Russian Trading System)와 MICEX(Moscow Interbank Currency Exchange)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