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박경리, '생명과 환경' 사상가로서의 면모

조철희 기자 2008.05.05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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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박경리, '생명과 환경' 사상가로서의 면모


한국현대문학사의 '거대한 산맥'으로 평가받는 작가 박경리씨가 5일 타계했다.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로 부각되는 면이 많지만 말년에는 사상가로서도 일가를 이뤘다.

박씨의 문학세계는 1969년부터 94년까지 무려 25년에 걸쳐 완성된 '토지'와 그 속에 담겨 있는 '한(恨)의 미학'으로 대표된다.



노년에 들어서는 생명·환경사상을 본격적으로 추구하며 작품발표와 강연, 대담을 통해 '생명의 평등'과 '생태의 중요성' 등을 강조해왔다. '토지'에도 생명사상이 살아숨쉬고 있지만 작가가 보다 직접적인 목소리로 생명과 생태, 환경을 강조했다.

비교적 최근인 2006년에는 월간 '현대문학' 8월호에 원고지 80장 분량의 '가설을 위한 망상'이라는 에세이를 발표했다.



이 글에서 박씨는 "창조주는 바람과 물과 불, 그리고 땅이라는 생존의 조건을 만들어놓고 능동적, 또는 자결권, 자유를 부여한 생명을 세상에 풀어놓았습니다. 비록 한시적이며 유한한 여정일지라도, 허상이라는 느낌이나 깨달음조차 살아있다는 인식 아니겠습니까"라고 썼다. 생명과 창조주에 대한 무한한 예찬이다.

2004년 7월에는 1995년부터 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글을 엮은 환경 에세이집 '생명의 아픔'(이룸)을 출간했다. 환경파괴 현장을 고발하는 글과 함께 자연에 동화하며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2003년 문학과 환경문제를 다루는 계간지 '숨소리'의 창간은 생명·환경운동에 대한 그의 강한 의지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이밖에도 박씨는 강연과 대담을 통해 '생명'을 이야기했다.

2003년 9월 한 인터뷰 기사에서 "정치적인 문제는 사람에 따라 참여하고 안할수 있지만 환경문제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며 "하다못해 벌레 한마리나 풀 한포기도 다 관련이 있으며 지구의 생명을 받은 것은 다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또 2000년부터는 청계천을 자연 상태로 복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2003년에는 새만금 살리기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박씨는 사위이기도 한 시인 김지하씨와 함께 한국문학에선 비주류라고 볼 수 있는 생명·생태·환경에 깊은 관심을 갖고 삶과 작품을 통해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박씨는 실제로 노년기 원주 토지문화관에 기거하면서 스스로 농사를 짓기도 했다. 농약을 쓰지 않고 지어 수확한 먹거리들을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생활 속에서 환경운동을 이어가기도 했다.

2000년 발간된 시집 '우리들의 시간'(나남출판)에선 그의 실천적 생명사상이 잘 드러난다.

'저녁밥 대신 / 창가에 앉아 / 콩을 까먹는다 / 삶의 의식 / 엄숙하지만 / 성가실 때가 많다 // 청춘 한가운데선 / 본능으로 / 밥을 먹었지만 / 이제는 알게 되었다 / 삶을 씹는 / 거룩한 의식이라는 것을' ('우리들의 시간' 중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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