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해 봤어?' 실용주의의 맹점

머니투데이 박재범 기자 2008.05.0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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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의 여의도 편지]

편집자주 별명이 '제비'입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릅니다. 친구들이 그렇게 불렀습니다. 이유도 명확치 않습니다. 이름 영문 이니셜 (JB) 발음에 다소 날카로운 이미지가 겹치며 탄생한 것 같다는 추측만 있을 뿐입니다. 이젠 이름보다 더 친숙합니다. 동여의도가 금융의 중심지라면 서여의도는 정치와 권력의 본산입니다. '제비처럼' 날렵하게 서여의도를 휘저어 재밌는 얘기가 담긴 '박씨'를 물어다 드리겠습니다.

 # 이명박(MB) 정부가 표방하는 실용주의는 영어로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이라고 한다. '프래그머티즘'의 어원은 그리스어인 프라그마(Pragma). 이 말의 뜻은 행동(action)과 실행(deed)이다.

 실용주의는 어원이 뜻하는 그대로 행동과 실천을 중시하는 학파다. 핵심 사상은 "유용한 게 진리"라는 것. 이전 시대를 풍미했던 경험론과 진화론이 바탕이 됐다.



 흥미로운 점은 실용주의가 유행한 지역과 시기다. 이전까지 모든 철학이 유럽의 전유물이었던데 비해 실용주의는 미국의 철학이었다. 탄생 시기도 자본주의가 꽃을 피우고 완성 단계에 돌입한 19세기 말이었다. 기업과 자본주의를 대변하는 철학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실용주의다.

 # MB는 경험을 강조하고 효용을 우선시한다. 사람들은 그 효용의 결과물에 박수를 보내왔다. 청계천이 그랬고 버스 중앙 차선제가 그랬다.



 기업가 출신이란 경력에 이념에 치우쳤던 지난 정권에 대한 반작용까지 겹치며 MB의 실용은 힘을 얻었다. 그가 공단의 전봇대를 뽑았을 때는 찬사가 쏟아졌다.

그가 메모할 때 볼펜을 쓰지 않고 연필을 쓰는 것을 두고도 빨리 수정하기 위한 실용의 면모라는 해석이 나왔다.

 # MB는 실용으로 지지를 끌어냈지만 그의 실용이 지닌 맹점도 없지 않았다. 그가 강조하는 '경험'이 첫 번째 걸림돌이 됐다. MB는 현안 토론 때마다 "해 봤어?"란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대운하 반대에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에도 그의 반박은 비슷했다. 안 해봤으면 잠자코 있으라는 투다. 영어 몰입 교육이나 교육 개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MB를 믿는 쪽에선 환호를 보냈지만 반대 진영에선 옳고 그름을 떠나 기분이 상했다. '해 봤냐?'는 경험만 물고 늘어지니 토론이 어려웠다. 포용이나 설득이 없다보니 자연스레 적이 늘었다.



 부작용만 최소화하면 된다는 효용 중시 분위기가 국가 운영에선 갈등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됐다. 기업에선 최고경영자(CEO)가 결정을 내려 추진하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만 국가 운영에선 다양한 이익단체, 반대 세력 등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수인데 MB의 실용엔 이러한 '정치력'이 부재했다.

 # 나라가 시끄럽다. MB가 대통령에 취임한 지 석달 밖에 안 됐는데 곳곳에서 한숨이 나온다. MB를 대통령으로 만든 청계천에 MB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모여들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와 광우병 괴담이 계기가 됐다. 그러나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중·고등학생들의 촛불에는 광우병과 함께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담겨 있다. '아륀지(Orange)', '우열반 교육' 등이 청소년들에게 준 상처는 생각보다 컸던 것 같다.

30-40대 샐러리맨들 역시 넥타이를 메고 정장을 차려 입고 청계천에 나왔다. 누구 말처럼 이들은 '반이(반 이명박)'일 수 있다.



 MB는 이들에 대해 "해 봤어?"라고 반문할까. "미국산 쇠고기 먹어봤어?"라고 물어볼까. 기업 조직은 그렇게 움직일 수 있어도 국가는 다르다.

MB의 "해 봤어?"는 지금 봉하마을에 계신 분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못 해먹겠다' '네 탓이요'와 본질상으론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봉하마을에 계신 분의 전철을 따르지 않으려면 일단은 국민들의 '타임 아웃' 요청을 받아들여 한번쯤 숨을 고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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