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가"...대구 성폭력 사태 상식밖 대처

머니투데이 최중혁 기자 2008.04.30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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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발생 5개월만에 경찰에 신고 접수

- 시교육청 "문서로 보고하라"
- 지역교육청 "좋아서 하면 성폭력 아니다"
- 여성가족부 "소관사항 아니다"
- 경찰 "신고할 정도는 아니다"

30일 대구에서 드러난 초등학생 집단 성폭력 사건은 '어쩌다 이 지경까지…'라는 탄식이 절로 흘러 나올 정도로 우리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고 있다.



가해 학생들과 피해 학생들은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범죄행위를 저지르고도 이를 장난 정도로만 여기는 등 성윤리 불감증까지 보이고 있어 어른들을 더욱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문제해결의 책임이 있는 학교와 교육청, 경찰 등은 사건을 축소시키기에만 급급했던 것으로 드러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학교폭력 및 성폭력 예방과 치유를 위한 대구시민사회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에 따르면 음란물에 무방비로 노출된 피해·가해 학생들은 전문가의 성교육 상담 과정에서 이해하기 힘든 말과 행동을 나타냈다.

성행위와 연관이 적은 특정 신체부에 대해 "고추 빠는 일을 해요"라는 말을 서스럼없이 하고, 성교육 중에 지퍼를 열고 자신의 성기를 노출하려 했다는 것. 자신의 몸을 "이상하고 중요하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임성무 전교조 대구지부 연대사업국장은 "맞벌이 부부가 많아 아이들이 음란물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며 "그러나 이에 대한 관심과 대책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공대위가 밝힌 사건경과를 살펴보면 대구시교육청과 경찰의 대응은 상식 밖인 경우가 많았다.

공대위에 따르면 작년 11월 20일께 대구 달서구의 모 초등학교 교사는 학생들이 성행위를 흉내내는 것을 보고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 학교기획위원회에 구두 보고했으나 오히려 학생들을 잘 지도하지 못했다며 꾸지람만 들었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잘못 지도한 책임을 지는 한이 있더라도 제대로 대처해야 한다고 교장에게 요구했지만 학교는 가해 학생 학부모 1~2명에게 전문상담기관을 안내하는 등 미온적인 대처만 뒤따랐다.

답답해진 교사들은 익명으로 관할 교육청에 문의했지만 시교육청으로부터는 "교장을 설득해 문서로 보고하라"는 대답을, 지역교육청으로부터는 "자기들끼리 좋아서 한 경우는 성폭력이 아니니 학교폭력으로 보고하라"는 대답을 들었다. 여성가족부로부터는 "소관사항이 아니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교장, 교감 등 학교 운영자들과 교사들은 법적 책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했음에도 뚜렷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대표적인 가해자로 지목된 아이 1명을 교장실에 불러 독서치료를 하는 등 미온적인 대처로 일관했다.

결국 한 달을 훌쩍 넘긴 올 1월 초 지역아동센터를 통해 시교육청과 지역교육청, 경찰 등에 어렵게 보고가 됐지만 이번에는 경찰이 엉뚱한 소리를 했다. 교장이 관할 경찰서를 방문해 자문을 구하자 "신고할 정도는 아니다"라는 답을 얻어온 것.

그 사이 교장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게 됐고, 결국 경찰에 대한 신고는 이 학교 여학생 3명이 지난 21일 남학생 10여명으로부터 윤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뒤에야 이뤄졌다. 무려 사건 발생 5개월이 지난 뒤였다. 현재 경찰에는 여학생 사건 외에 2건 등 총 3건이 신고 접수돼 있다.

임성무 국장은 "학교측이 가해자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사건을 덮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며 "그 사이 더 큰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기회를 다 놓치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공대위는 "어른들이 즐기는 음란물이 아이들에게는 따라 할 꺼리가 됐고, 포르노는 교과서가 됐으며, 성폭력은 실제가 됐다"며 "어른들이 모두 각자의 책임을 통감하고 사회 전체적인 근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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