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 빠진 삼성호 '위기속 새 실험'

머니투데이 오동희 기자 2008.04.22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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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그룹해체… 집단지도 후 경영권이양 예상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2일 오전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에서 대국민 사과와 그룹회장직 사퇴 발표를 한 후 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br>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2일 오전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에서 대국민 사과와 그룹회장직 사퇴 발표를 한 후 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이건희 회장 퇴진으로 삼성그룹은 당분간 혼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오너십 경영의 중추역할을 했던 이 회장이 사라진데다 그를 대신할 전략기획실 같은 '장치'들 마저도 없애 일종의 '무정부상태'에 빠져드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이 회장의 퇴진과 전략기획실의 해체는 곧 삼성그룹의 사실상 해체가 아니냐는 질문에 삼성 그룹 관계자는 "내 입으로는 말할 수 없다"면서도 그룹 해체적 성격에 대해 부인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룹 안팎에선 삼성그룹이 위기를 맞아 새로운 경영실험을 시도하고 있다고 평가하는가 하면 4~5년간의 혼란기를 거쳐 이재용 전무로의 경영권 승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그 과정에서는 사장단을 중심으로 한 집단지도체체의 가능성이 높으며, 이후 삼성 그룹의 순환출자 구조가 정리되면 이 전무 등 3남매에 대한 계열분리도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집단지도체제 가능할까= 이 회장이 그동안 삼성그룹 회장실에 출근하지 않았지만 승지원에서 업무를 보면서 전략기획실을 통해 삼성의 59개 계열사를 경영해왔다. 삼성은 이 회장의 리더십과 전략기획실의 조율기능, 각 계열사의 자율경영체제의 3각축으로 운영돼 왔다. 그러나 이 가운데 핵심기능 2가지가 빠지면서 혼란에서 빠져들 공산이 크다.

이학수 전략기획실장은 쇄신안 발표 자리에서 "이 회장의 자리는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대신할 것이며, 그룹의 주요 기능은 사장단협의회를 통해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은 그동안 각 계열사 사장들이 참석한 수요회의를 매주 진행해왔다. 하지만 이 수요회의의 주요 내용은 사장단에 대한 교양교육 수준이었으며 그룹내 주요이슈가 있을 때 간단한 토론 기능만을 해왔다.

이 회장이 퇴진하고 전략기획실을 폐지하는 대신 이 수요회의를 공식화한 사장단협의회를 구성하고, 이수빈 회장이 협의회 의장을 맡는다는 게 삼성의 복안이다.


삼성 그룹 고위 관계자는 "사장단협의회는 결정권을 가진 조직은 아니다"며 "주요 현안에 대해 협의하고 조율하는 기능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삼성 그룹 내 절대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조직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이 고위 관계자는 "삼성은 향후 완전한 계열사의 자율 경영체제가 될 것"이라며 "각 계열사간 상충되는 부분에 대한 조율 기능이 어떻게 될 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해 사실상 그룹 개념의 삼성이 사라졌음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삼성그룹은 당분간 계열사간 의견충돌 등을 조율하는 기능이 없어진 채로 가게 된다.



경영권 승계 어떻게 되나=이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퇴진하더라도 삼성그룹의 대주주 지위는 여전한 만큼 경영권 승계부분도 또 하나의 관심이다. 이 회장은 지난 1997년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을 통해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 (63,000원 ▼100 -0.16%)→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삼성 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를 완성했다.

에버랜드 최대주주인 이재용 전무가 삼성그룹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구조는 이미 완성된 셈이지만 그렇다고 이 회장이 해오던 경영권을 이번에 이 전무로 바로 이양하는 것은 어려운 게 사실이다. 삼성은 이번 쇄신안 발표에서 삼성카드가 보유한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4~5년내에 매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순환출자의 고리를 끊고 어떤 형태로든 지주회사로의 모양새를 갖춘 후 이 전무로의 경영권 이양에 나설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 지주회사는 20조원 가량의 자금이 투입되는 순수지주회사가 아닌 일부 계열사간 출자가 가능한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4~5년 후 이 전무가 경영능력을 인정받으면 이전무와 이부진 호텔신라 상무,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보 등 이 회장의 3남매로의 상속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때 계열분리를 통해 현 삼성그룹이 3개의 가지로 분리될 것이라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이 전무가 전자와 금융을 맡고, 이부진 상무가 호텔과 화학, 이서현 상무보가 패션과 의류로 분리해 경영권 이양을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한솔과 CJ, 신세계 등 선대 이병철 회장 당시 자녀들에게 나눠졌던 것과 비슷한 과정을 밟을 것이란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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