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병칼럼]'큰 것'이 좋으십니까

머니투데이 강호병 부장 2008.04.15 13:38
글자크기
 
[강호병칼럼]'큰 것'이 좋으십니까


동일한 것이라도 크기가 다르면 다른 의미를 갖는다. 동물ㆍ식물은 물론 자동차ㆍ건물ㆍ조각 등 인간의 창작물 크기는 사회적ㆍ심리적ㆍ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다. 크다는 것은 권력과 지배, 그리고 과시욕구를 드러내는 것이다. 작다는 것은 친밀성을 갖는다. 휴대폰걸이로 만들어진 에펠탑 모형은 진짜 에펠탑이 갖는 웅장하고도 충격적인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역대 권력자들은 무엇을 만들든 크게 만들려고 했다. 제왕적 지도자일수록 이같은 경향이 더했다. 프랑스 절대군주 루이 14세가 지은 베르사유궁전, 진시황이 만든 만리장성, 수나라의 대운하…. 모두가 크기로 자신의 위용을 과시하려 한 것들이다.



국가체력을 무시하고 과시욕만 앞서 민중의 수많은 희생과 고통을 강요한 이같은 일들은 결국 왕조의 몰락을 불렀다. 이같은 경향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마천루경쟁, 패권경쟁…. 크기 면에서 1위를 못해 안달이다.

 최대 크기를 위해 무모함마저 무릅쓰려는 욕구는 위정자의 몫만은 아니다. 재벌들의 끝없는 확장욕구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재계서열은 자산이나 매출 같은 외형으로 매겨진다. 그 서열을 높이기 위해 2위 이하 기업그룹은 부단히 몸부림치고 있다.
서열이 떨어지면 기분나빠하고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M&A를 시도하는 것도 마다않는다. 제어되지 않은 재벌들의 무모한 확장욕은 결국 97년 외환위기를 불러왔다.



재벌 확장욕에 대한 관리시스템이 그래도 작용하는 지금이지만 재벌의 확장본능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국내 1위는 또 세계에서 크기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일도 크기로 업적을 과시하려는 규모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끊임없는 경제적 효용성, 환경파괴 논란에도 불구하고 추진의 뜻을 굽히지 않는 경부 대운하사업이 그렇고, 금융에서 우리금융ㆍ산업은행ㆍ기업은행을 하나로 엮어 메가뱅크를 만들고자 하는 것도 그렇다. 경제적으로는 하는 것이 좋다는 보장이 없는데 굳이 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정치적이다.

 메가뱅크는 한국에도 세계적으로 명함을 내밀 만한 거대금융그룹이 있음을 과시하려는 욕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본다. 뒤집어 보면 작은 것에 대한 콤플렉스다. 메가뱅크가 만들어지면 그 이하의 신한지주ㆍ국민은행ㆍ하나금융그룹에 크기 열세라는 스트레스를 심하게 줘서 은행에 또한번 메가합병붐을 유도하게 될 가능성이 적지않다.


 은행산업에 몇개가 있어야 좋은지는 답이 없다. 이론적으로 과점적 상태가 좋다는 것 정도만 컨센서스다.

 경제적으로만 보면 국내에서 정부 영향력 하에 있는 이런저런 금융사를 합쳐 만든 메가뱅크는 약이 아닌 독이 될 수도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버블에 취해 큰 피해를 본 것은 각국의 내로라할 만한 금융그룹이었다. 세계에 과시할 만한 큰 것 두어 개 있는 금융산업이 안전하고 효율적이라는 보장이 전혀없는 것이다.

 그리고 국내에서 이것저것 조합해 큰 것 만드는 데서 오는 경쟁제한성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메가뱅크안은 금융의 대운하사업이나 마찬가지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