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이냐 물가냐, 그것이 문제로다

더벨 김재은 하나대투증권 이코노미스트 2008.04.1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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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FX스토리]"경기둔화 짧더라도 금리인하 요구 계속될 것"

편집자주 【편집자주】'초'를 다투며 피 말리는 머니게임이 벌어지는 글로벌 금융시장. 한시라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그곳은 정글이나 다름없습니다. 나무와 숲을 모두 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곳이기도 합니다. 통화전쟁이 벌어지는 현장의 이야기를 thebell이 엄선한 칼럼진들이 매주 돌아가며 전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성장이냐, 물가냐'

정확히 4월10일 금융통화위원회 전까지 국내 경제, 특히 통화정책을 둘러싼 화두는 이것이었다. 신정부 출범 이후, 이에 대한 논의는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의 대립 구도로까지 확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직면한 물가 상승세와 불안한 환율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이와 더불어 잠재적인 성장 둔화 우려가 점차 확대되면서 기획재정부의 장·차관 등 경제 수장들은 연일 성장 관점의 발언을 지속했다.

이명박 정권이 7%대의 성장 공약을 내세우며 청와대 입성에 성공하였음을 감안하면 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 당국의 적극적이고도 확실한 태도는 상당히 높게 평가할 만 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여과 없이 노출된 경제 수장들의 발언으로 인해 금리 및 환율 등 시장 변동성은 좀처럼 안정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의 태도, 금리인하 제안보다는 요구에 가까워"

정부의 성장 목표 자체가 당장 실현 가능한 수준이라기보다는 그야말로 '목표치'로만 인식되는 상황에서 오로지 성장만을 주장하는 듯한 발언을 경계하는 시각 역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집권 후 두 달이 지난 지금은 성장 목표치를 하향 조정하는 등 대선 당시보다 훨씬 현실감을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성장을 위해 금리 인하를 주장하는 정부의 태도는 한국은행에 정책 공조를 제안하는 모습이라기보다는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의 신용 위기가 연준리의 적극적 대응으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이제는 실물 지표의 본격적인 둔화가 나타나고 있어 여전히 불안한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생산과 수출, 소비 등의 지표는 아직까지 대체로 양호하지만 리스크 요인들은 점차 구체화 되고 있다. 서비스 적자는 여전한 상황에서 수입이 빠르게 늘고 있어 상품수지는 악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경상수지도 적자를 나타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방향성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지만 사실상 이러한 혼란스러운 틈에 이미 올해 들어 한 단계 level up 된 상황이다.

통화정책, 사실상 금리인하 시기만 남겨 놓은 문제

한편 물가 상승세는 지속되고 있는데 수요 기반의 물가 압력이 아니라 공급 측면, 특히 상품가격 상승세를 동반한 외생적 영향이라는 측면에서 질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이다. 정책 당국자의 입장이 아니더라도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이 떠오를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결국 가장 관심이 모여지는 것은 통화정책 상의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질 지에 대한 것이다. 국내 통화정책 기조는 지난 해 말까지는 긴축 방향으로 열린 중립이었으나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의 확대 및 신정부가 성장 드라이브를 강력히 주장하면서 완화 방향으로 돌아선 중립으로 급선회되었다. 4월 금통위에서 한은이 경기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사실상 금리 인하 시기만 남겨놓은 문제가 되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은행이 통화정책을 중립으로 유지해 온 가장 큰 근거는 물가다. 근래 물가 상승 압력이 크게 확대된 원인은 무엇보다도 유가 등 상품가격의 상승세에 기인한다.



하지만 현재 나타나는 물가 상승 압력은 수요 기반의 물가 상승 압력은 아니라는 점과 지난해 초 베이스가 유난히 낮았음을 감안하면, 향후 점차 물가 상승 압력은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내 경기 상황을 감안해도 상품가격 상승세가 추가로 진행되지만 않는다면 1분기를 고점으로 국내 물가는 점차 안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입소비재 비중 급속 확대..물가 작년의 낮은 수준으로 회귀 어렵다"

그러나 그 동안 물가 안정에 상당한 기여를 했던 원화 강세가 사실상 추가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은 향후 물가에 부담이 되는 요인이다. '완화적 통화정책(금리인하) + 원화 약세 용인'으로 반영되고 있는 신정부의 성장 정책이 상당 부분 물가를 희생하고 가겠다는 것으로 이해되는 현 상황을 전제로, 외환위기 이후 국내 소비 패턴이 변화한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국내에서 소비·지출되는 재화 중 수입소비재의 비중은 1990년에는 5% 수준이었으나 2000년에는 11.5%로 확대되었고, 현재는 전체 재화소비 중 4분의 1 남짓한 수준까지 확대되었다.

기간 대비 빠른 속도로 확대된 가장 큰 근거는 중국이다. 2000년 이후 중국의 수출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국내에서도 저렴한 중국산 제품의 수입이 급증하였다. 그런데 상품가격 강세가 수년간 지속되면서 더 이상 중국산 제품도 인플레이션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화 약세가 지속된다면 국내 경제에는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즉, 수출로 채산성이 개선되더라도 수입 부문에서 긍정적 효과가 상쇄될 수 있으며, 2000년 이후 구조적으로 지속된 내수와 수출의 양극화 관점까지 더해서 본다면 수출 기업들의 양호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내수로 선순환되는 부분은 크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결국 소비자들의 효용만 희생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상당히 우려되는 부분이다.



종합하면 국내 물가는 1분기를 정점으로 점차 하향 안정되겠지만 지난 해의 낮은 수준으로 되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둔화 사이클은 짧겠지만 금리인하 요구는 계속될 것"

경기 둔화 사이클은 짧게 마무리 될 가능성이 높지만, 성장 관점의 금리 인하 요구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은 및 유수의 전망 기관들이 전망하고 있는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률은 신정부의 목표에 한참 하회하는 낮은 성장률이다. 반면 직면한 물가 상승세를 두고도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를 주장하는 정부의 성장률 목표는 대선 때보다 한참 양보한 후에도 6% 수준이다.



정부의 성장률 목표치를 감안하면 경기 부양을 위한 거시적·미시적 조치가 전방위적으로 이어질 것이며, 금리 인하에 대한 필요성도 계속 주장될 수 있음은 자명하다.

버릴 수 없는 논리를 가지고 팽팽히 맞서고 있는 양쪽의 입장에 모두 수긍이 간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물가 상승세는 수요 기반이 아니라 외생적인 비용 요인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통화정책으로 관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과 향후 기조적으로 물가 상승세는 진정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완화적 통화정책으로의 선회에 힘이 실린다.

그러나 여전히 풍부한 유동성과, 금리 인하로 원화 절하 속도에 가속이 붙을 수 있다는 우려 등을 감안하면 금리 인하의 폭과 속도 역시 제한된다. 금리 인하가 이루어지더라도 한 두 차례에 그친다면 실제적으로 금리 인하 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으며, 상징적 효과 이외에 실제적인 경기 부양 효과가 크지 않다면 굳이 금리 인하를 해야만 하는가 하는 원점으로의 회귀 문제도 역시 비등한 무게로 고민되는 부분이다.



10일, 금통위원이 3명이 새로 교체된 이후 첫 금융통화위원회가 개최되었으며 예상대로 일단 '동결'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점차 금리 인하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으며, 경기 둔화의 선제적 방어가 금번 금리 인하 주장의 가장 큰 근거임을 감안하면 2분기 내에는 금리 인하가 단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성장이냐 물가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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