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차칸 파수꾼'

머니투데이 윤석민 부장 2008.04.11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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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차칸 파수꾼'


미래학자 폴 케네디를 10년전 예일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1998년 성급히 기획됐던 밀레니엄 특집을 위해 진행된 인터뷰에서 케네디가 했던 말중 기억나는 부분은 많지 않다. 기억력 때문이 아니라 세월 탓이던지. 아니면 사는데 별 영양가가 없었던 지...

다만 그가 넋두리처럼 내뱉던 몇 마디만은 여전히 귓전을 맴돈다. "아침에 일어나 PC를 켜면 이메일은 40여개나 쌓여있고…" 다가올 미래사회와 정치경제시스템에 대해 거창하게 설명하다 생뚱맞게 덧붙였던 말이다.



문명이기사회의 양면성을 그답게 풀어낸 지적이었다.

아무리 기술문명이 발달하면 뭐하냐 바쁜 아침 시간에 몸은 하나인데 언제 읽겠느냐, 결국 모든 선택과 결정, 시간과 노력의 배분 등은 여전히 나 혼자의 몫인데 어쩔거냐, 뭐 이런류의 푸념이었던 것같다.



케네디는 다소 비관론자이다. 당시 그는 풀이 많이 죽어 있었다. 그를 일약 세계석학의 반열에 올려놓았던 저서'강대국의 흥망'에서 논했던 미국의 쇠퇴 예측이 완전히 빗나간 때문이다.

IMF외환위기가 깊어가던 당시 미국은 다우가 1만을 넘으며 경제적 자만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다. 쇼크를 받은 케네디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수염도 완전히 밀어버렸다고 농담처럼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랬던 그가 한 말이지만 10년이 지나도 절절히 몸에 와 닿는다. 핸드폰만 해도 그렇다. 영상통화다 GPS다 이런 세상에 좋은 줄만 알았더니 요즘 희자되는 범죄인용 '전자팔찌'와 다를 바 하나없다. 탕 입구에 줄줄이 놓아두고 근무중 사우나를 즐기던 삐삐시절이 몹내 그립다.


요즘 필요할 때 맞춤으로 본다는 디지털 TV, 언제나 볼꺼리가 넘쳐 밤잠을 설치게 하는 케이블 TV 등도 숱한 채널로 항상 갈등하게 만든다.
지금의 선택이 최선인지, 혹 딴 곳에서 더 유익하고 재밌는 프로를 하고 있는 지 안달난다. 그보다 더한 것은 한 프로를 보고있는 동안에도 새 것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케이블에서 틀고 또 트는 '무한도전'을 보며 웃고 즐기다 보니 화제는 늘 남보다 3~4주 떨어져 있다. 시간은 분명 돈일진데.

에두르지 말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기자라는 업을 다시 생각해 본다. 취재원과 밥 먹는 일외에 여러가지 기능이 있겠지만 그중 '게이트 키핑(Gate keeping)'이 제1의 업무이다. 넓고 넓은 정보의 바다에서 가장 유용하고 정확한 사실만을 건져내 신속히 독자나 시청자에게 펼쳐보이는 본연의 업무를 말한다.



그런데 새로운 미디어다, 뭐다 신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사회는 갈수록 다변화, 다양화하며 정보는 홍수를 이룬다. 이중에 알짜 옥석을 가리기는 더욱 힘들어진다.

그래서 기자는 늘 긴장해야 한다. 이 긴장이 살떨려 한동안 펜을 놓았었다. 이제 오랜만에 돌아와 자세를 가다듬는 중이다. 늘 긴장하며 깨어있는 '차칸 파수꾼'이 될 것임을 약속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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