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그리고 박근혜

머니투데이 박재범 기자 2008.04.1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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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의 여의도 편지]

편집자주 별명이 '제비'입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릅니다. 친구들이 그렇게 불렀습니다. 이유도 명확치 않습니다. 이름 영문 이니셜 (JB) 발음에 다소 날카로운 이미지가 겹치며 탄생한 것 같다는 추측만 있을 뿐입니다. 이젠 이름보다 더 친숙합니다. 동여의도가 금융의 중심지라면 서여의도는 정치와 권력의 본산입니다. '제비처럼' 날렵하게 서여의도를 휘저어 재밌는 얘기가 담긴 '박씨'를 물어다 드리겠습니다.

# 이명박 대통령(MB)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다르다. 성장 과정, 살아온 길 등 어느 곳에서도 공통점을 찾기 쉽지 않다. 겹치는 지점이 없다.

MB는 가난했다. 힘들게 학교에 다녔고 항상 일을 했다. 대학 졸업 후에도 현장에서 뛰고 부딪쳤다.



박근혜는 가난하지 않았다.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무난히 다녔다. 대학 졸업 후 유학도 떠났다. 어머니를 잃은 뒤 퍼스트 레이디로 현장에 나섰지만 노동판은 아니었다.

# 겉으로 드러나는 차이는 단편적이다. 두 사람의 자서전을 차례로 읽어보면 '다름'의 느낌이 더 깊게 다가온다.



MB의 자서전은 '구체적'이다. 가난도, 노동도 사실에 가깝다. 그리고 현장, 현실과 끊임없이 부딪친다. 이런 구체의 나열로 하나의 책이 구성된다.

박근혜의 책은 '추상적'이다. 사실이 담겨 있지만 표현은 사실에서 한발 더 나간다. 현장, 현실과 부딪치면서도 끊임없이 절제한다. 이런 절제가 모여 인생을 설명한다.
이명박, 그리고 박근혜


# 삶의 스타일, 정치 스타일도 그대로다. MB는 구체적인 것을 즐긴다. 빙빙 돌리지 않고 핵심을 찔러야 만족한다.

현장도 즐겨 찾는다. 주변과 어울릴 때도 시끌벅적하다. 특유의 부딪침이다. 그가 강조하는 실용과도 맞닿는다.


박근혜는 반대다. 단전호흡, 명상 등 취미도 '추상적'이다. 말도 아낀다. 그래서 간혹 던지는 한마디가 더 무섭고 아프다.

주변과 어울릴 때도 조심스럽고 조용하다. 특유의 절제다. 그가 강조하는 원칙과도 맞물린다.

# 두 사람은 늘 부딪쳤다. 2007년 내내 그랬다. 그때마다 MB는 실용을, 박근혜는 원칙을 강조했다. 속으론 상대를 향해 '장사꾼', '공주'란 마음도 품었을 법하다.

때론 감정적 대립도 적잖았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그릇을 깨뜨린 것은 아니다. 때론 실용적 접근이, 때론 절제의 미덕이 파국을 막았다. 누가 낫다는 평가보다 두 사람이 '공존'하는 것에 국민들은 지지를 보냈다.

# 올초 MB와 박근혜는 또 맞섰다. 공천 문제를 놓고 마주한 둘은 팽팽했다. 박근혜는 "공정 공천"을 강조했다. "나를 도운 ○○○, ○○○ 등을 챙겨 달라"는 구체적 언급은 하지 않았다.

MB는 공정 공천과 관련 "알았다"고 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없었다. 한쪽은 '합의'로 받아들였고 다른 쪽은 이해로 해석했다.

둘 사이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 지점이었다. 이후 공천 칼바람이 현실화됐다. 절제 속 인내하며 지켜봤던 박근혜는 "속았다"고 분개했다. 그리고 그 후폭풍은 시작됐다.

# 총선은 후폭풍의 결정체였다. 박근혜는 최소한만 움직였다. 대구에 머물며 바깥 출입을 삼갔다. MB를 향한 '무언의 저항'이었다.

어정쩡한 박근혜에게 비판이 쏟아졌다. '선거의 여인' 박근혜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분석이 우세했다. 한나라당과 MB의 위력을 감안할 때 대다수가 이에 수긍했다.

#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박근혜의 힘은 예상보다 강했다. "저도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는 말 한마디로 당 안팎에 60명 가까운 의원을 만들었다. 과반 의석 확보로 MB도 승리했지만 그 승리가 찜찜한 이유가 여기 있다.

개인의 능력차는 아니다. 지난해 대선 후보 경선 이후 두 사람을 향한 민심의 메시지는 일관됐다. 박근혜를 향해선 MB를 도우라 했고 MB를 향해선 박근혜를 품으라고 했다.

지금까지 판단은 후자가 부족하다는 것. 공교롭게도 박근혜가 없을 때 MB의 독주란 비판이 나왔다. 둘은 다르지만 같이 있어야 파국을 피한다. 그러기 위해선 MB가 절제와 인내를 배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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