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저성장 탈출구를 찾아라

머니위크 이재경 기자 2008.03.17 08:32
글자크기

[머니위크 커버스토리]스태그플레이션 악몽

농산물과 원자재 가격상승으로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이 증대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물가상승에 따른 서민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식품회사들은 올초 국제 콩가격이 최고치를 기록하자 공장가동을 중지했고 노동자들은 항의시위를 했으며 방글라데시는 밀가루 가격급등으로 서민경제불안이 지속되고 있다. 멕시코에서는 지난해 옥수수로 만든 또띠야 가격이 급등하자 국민들이 항의시위를 벌였고 멕시코 정부는 가격상한선까지 설정했다.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로 미국은 공격적인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그 결과 글로벌 유동성은 곡물 및 원자재 시장으로 이동했고 가격급등 현상을 가져왔다. 여기에 중국의 고성장은 중국 물가상승을 부추겼고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시작된 전세계적인 금융불안과 실물경제침체, 여기에 원유 곡물 철강 등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이 우리나라의 경기하방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는 가운데 경제성장이 주춤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저성장-고물가(스태크플레이션) 국면 진입에 대한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고물가·저성장 탈출구를 찾아라


◆인플레, 비용 때문인가 소비 때문인가



최근 국내 물가 급등현상은 국제 원자재가와 같은 해외 비용인상 요인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요인으로 ▲국제 원자재가격 급등 ▲차이나 인플레이션 수출 ▲원화 약세 등을 꼽았다. 이 가운데 국제 원자재가격 급등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수입물가지수는 지난해 9월 이후 상승세가 빨라졌으며 올 1월에는 전년동월에 비해 21.2%를 기록했다.

수입농산품 물가지수의 경우 올 1월 전년동월대비 55.0%의 급등세를 보였다. 수입연료 광물 물가지수의 경우에도 지난해 하반기 이후 상승세가 급격해지며 올 1월 39.0%의 상승률을 나타냈다.


중국은 비용인상 요인과 경기 요인의 이중 인플레이션 압력에 직면해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1%에 이르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의 주요 18대 품목의 2007년 평균 수출물가 상승률은 14.4%에 달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 중국 수입이 총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18%에 이르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 수입물가 상승에 '차이나 인플레 수출'이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중국 정부의 위안화 절상 용인 정책의 영향으로 위안화의 대 달러화 환율마저 절상돼 글로벌적인 '차이나 인플레 수출' 현상은 더 가속화할 것으로 주원 연구위원은 전망했다.

고물가·저성장 탈출구를 찾아라
전년동기대비 원화표시 수입물가 상승률은 지난 해 8월 -0.7%에 그쳤으나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올 1월에는 1998년 이후 최고치인 21.2%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국내 수요측 요인에 의한 물가 상승 압력은 없는 것일까. 한국경제가 수년간 5% 내외의 성장 속도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다. 그럼에도 국내 경기적 물가 상승 압력은 거의 없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근원물가 상승률의 경우 최근까지 2%대 초반 수준에서 크게 변동하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시중 과잉 유동성은 여전히 물가 상승의 잠재적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원 연구위원은 "최근 통화량 증가율, 가계대출 증가율, 주택가격 증가율이 양의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다"며 "과잉 유동성이 자산시장 물가 수준에는 일정부분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진단했다.

◆경기 하강 위험에 직면한 한국경제

한국경제는 올 1분기 이후 경기 하강국면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제 원자재가격의 급등과 금융불안의 지속으로 저성장-고물가에 직면할 가능성에 대한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2008년 세계 및 국내 경제 전망>에서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상반기 4.9%에서 하반기에는 4.4%로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간 경제성장률도 4.7%로 지난해 4.9%에 비해 소폭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당초 5.0%로 예측했었다.

도이체방크는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3.9%로 예상해 가장 비관적인 전망치를 내놓기도 했다.

이같은 비관적인 전망에는 세계 경기의 하강, 내수의 성장모멘텀 약화, 주식시장의 침체, 일자리 창출력 약화, 물가불안 확대 등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국제유가가 세계경제와 국내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일반적으로 9~12개월 정도의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며 "국제유가가 급등하기 시작한 것이 지난해 2월부터라고 보면 국내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본격화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용상 연구위원은 또 "두바이유가 2007년 저점에 비해 91.4% 상승한 것을 고려하면 경기와 물가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세계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하면 당해 연도의 우리나라 수출증가율과 경제성장률은 각각 4.36%포인트, 1.47%포인트씩 하락하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글로벌 경제침체가 국내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예측했다.

◆경기부양이냐 물가잡기냐…정부의 딜레마



우려는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최근 물가급등 현상은 국내 요인이 아니라 해외로부터 시작된 비용 상승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 수요 요인이 인플레이션 압력에 현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금리 인상과 같은 긴축적 통화정책으로 총수요를 억제해 물가 안정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반면 비용이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하면 금리 인상보다는 환율 정책, 미시적 시장 정책, 감세 정책 등이 물가 안정 수단이 돼야 한다.

지난 2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정책금리인 콜금리 목표치를 동결한 것은 다름 아닌 물가 때문이었다.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 금리를 줄줄이 인하하는 데도 국내외 금리격차를 좁히지 않은 이유였다. 그만큼 물가가 크게 치솟고 있으며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컸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인플레이션보다 스태크플레이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경기침체 속에서 물가가 오르는 현상에서는 정책을 세우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경기침체를 우려해 금리를 내리면 유동성이 증가해 물가가 더 오를 것이며 물가를 잡겠다고 금리를 올리면 경기는 더이상 살아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물가·저성장 탈출구를 찾아라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정부가 중립적인 거시경제정책을 선택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주원 연구위원은 "중립적 금리 정책을 통해 정책 촉발형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며 "무리한 금리 인상 정책은 자칫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되지 못하면서 경기 급랭을 촉발시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황인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 거시정책의 기본틀은 경기상승 모멘텀 유지와 물가 안정 양쪽에 모두 신경써야 한다"며 "경기의 하방 리스크가 커질 경우 재정 확대 등 경기부양모드로 신속히 전환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향후 경기하강에 대한 우려로 내수부문을 진작시키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신용상 연구위원은 "경사수지 적자폭 확대와 외국자본의 해외이탈 등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며 "해외부문의 긴축상황을 보완하고 과도하게 위축될 수도 있는 내수부문의 진작을 위해 선제적인 금리인하를 고려해 볼 필요도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어떤 정책을 제안하든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향후 경기침체를 우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경기가 급랭할 경우 확장적 재정 정책 및 팽창적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회복 및 경기 연착륙에 주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만 과거 외환위기 이후 신용대란 및 부동산가격 폭등 등 급속한 경기부양책의 부작용을 겪었던 아픔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과제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