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심에서 느끼는 3·1절 함성

머니투데이 김명룡 기자 2008.02.29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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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통부 기념비, 유관순 우물터 등 역사유적 많아

오는 1일은 89주년을 맞는 3.1절이다. 3.1절 하면 흔히 탑골공원, 천안 아우내 장터 등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서울 도심 한복판에 3.1절과 관련된 유적지가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19년 3.1운동 이후 수립된 상해임시정부와의 비밀연락망이였던 ‘서울연통부 기념비’, 유관순 열사가 이화학당 재학시절 빨래를 했다는 ‘유관순 우물터’, 기독교계의 3.1운동 발원지인 ‘정동교회’, 3.1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보성사터’ 등이 바로 그것이다. 도심 속에서 가족 또는 연인과 함께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며 3.1절의 함성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연통부 기념비- ‘독립운동가들의 비밀연락망’
↑ 동화약품 사옥앞에 위치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연통부 기념비’↑ 동화약품 사옥앞에 위치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연통부 기념비’


부채표 까스활명수로 유명한 111년 전통의 동화약품 (8,630원 ▼50 -0.58%) 사옥앞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연통부 기념비’가 있다.

연통부는 3.1운동 직후 조직적인 독립활동을 위해 수립된 중국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의 비밀연락 행정의 첫 조치로서 국내와 국외를 연락하는 방법으로 연통제(聯通制)를 실시함에 따라 설치한 비밀 행정부서이다.



당시 일본의 탄압 때문에 공공연하게 연락망을 설치할 수 없었고, 민족의 광복때까지 지속적인 독립운동을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서울 연통부의 총책임자는 동화약방(동화약품의 전신)의 사장인 민강이 맡고 있었다.

동화약방은 연통부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독립운동가의 독립자금 마련에도 한 몫 했다. 당시 60ml짜리 활명수 1병 값은 50전으로 설렁탕 두 그릇에 막걸리 한 말을 먹을 수 있는 수준의 비싼 가격이었다. 독립운동가들은 중국으로 건너갈 때 돈 대신 활명수를 휴대했다가 현지에서 비싸게 팔아 독립자금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한다. ‘연통부 기념비는’ 일제시대 연통부가 있었던 것을 기념해 광복 50주년인 1995년도에 서울시에서 세운 것이다.

연통부가 있었던 ‘동화약품’은 민족기업으로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동화약품 현대화의 기틀을 마련한 5대 사장 보당 윤창식(1890~1963) 선생은 일제치하에서 민족경제 자립을 목적으로 조직한 항일비밀결사조직체인 조선산직장려계(朝鮮産織奬勵契)에서 총무로 활동하며 육당 최남선, 최규익 등과 함께 민족혼을 고취하고 국산품 애용운동을 펼쳤다. 이 밖에도 조선독립운동 국내기간단체였던 신간회(新幹會) 및 보린회(保隣會)에도 적극 활동하여 조국광복에 힘썼다.


위치: 지하철 1,2호선 시청역 10번출구로 나와서 도보로 7분

◇ 정동교회 - 기독교계3.1운동의 발원지
↑ 한국 최초의 개신교회인 정동교회↑ 한국 최초의 개신교회인 정동교회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 보면 분수대 가까이에 붉은 벽돌의 예배당이 보인다. 정동교회는 한국 최초의 개신교회며 한국 신문화의 요람지이며, 기독교계3.1운동의 발원지였다. 114년 전 아펜젤러 선교사가 처음 교회를 세운 이후, 한국기독교의 역사를 몸으로 증거하면서 한국 근대화의 진원지가 됐다.

서재필, 윤치호, 이승만 등 수많은 민족지도자들이 이 교회를 통해 조국의 새로운 미래에 대한 꿈을 키우도록 도왔다. 정동제일교회는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하셨던 이필주 담임목사와 박동완 전도사를 비롯한 온 교인들이 3.1 독립운동에 참여하였고, 많은 교인들이 일제에 구속되는 아픔도 겪었다.

위치: 지하철 1,2호선 시청역 1,2번출구로 나와 덕수궁 돌담을 끼고 이화여고 쪽으로 5분

◇ 보성사터-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곳
↑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보성사터↑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보성사터
보성사는 1910년 말 창신사와 보성학원 소속 보성사 인쇄소를 합병하여 만든 천도교 계통의 인쇄소이다. 3.1운동 동시 2만장의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곳이기도 하다.

당시 보성사 사장이었던 이종일은 공장 감독 김홍규, 총무 장효근 등과 함께 1919년 2월 27일 이곳에서 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자신의 집으로 운반한 뒤, 다음날 전국 각지에 배포함으로써 독립운동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보성사는 현 종로구 조계사 경내에 있다. 기념비와 동상은 조계사 후문 맞은편 근린공원에 있다.

◇ 유관순우물터, 유심사, 탑골공원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로 나와 현대사옥 옆골목에서 중앙고교 쪽으로 올라오면 유심사가 있다. 유심사는 만해 한용운 스님이 1918년 9월 월간지 '유심'을 창간하고 제3호까지 발행한 곳이다. 유심사는 3.1만세운동을 위해 천도교 측과 기독교 측의 합작 교섭을 마무리한 최린이 한용운을 방문해 불교계의 참여를 허락받았던 곳이다.

이밖에도 유관순 열사가 이화학당 재학시 기숙사에서 기거하며, 자주 빨래를 했던 우물 터가 중구 정동 이화여고 본관 아래쪽에 있다. 탑골공원은 3.1운동 시위의 발원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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