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숭례문이 남긴 찜찜한 메시지

머니투데이 유승호 온라인총괄부장 2008.02.2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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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숭례문이 남긴 찜찜한 메시지


 안상수 인천시장이 지난해 기자들과 만나 "노무현 대통령은 전략에서 실패했다. 정치는 탠저블(tangible)한 것, 즉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으로 승부해야 한다. '역사 바로세우기' 같은 눈에 안보이는 것으로 했으니 실패한 것"이라고 꼬집은 적이 있다.

안 시장의 지적은 정치세계의 상식이고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명박 당선인의 역작 '청계천'이 그것을 입증했다. 대통령 선거기간 내내 청계천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면서 "승부를 짐작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 당선인은 지난해 12월19일 당선 확정 후 청계천으로 옮겨 자축행사를 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이 살 길은 도시디자인"이라고 말한 것도 '눈에 보이는 것'에 승부를 걸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 만으로 성과를 내기도 바쁜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매달리는 정치인은 어리석을 만큼 고지식하거나 본디 담론을 즐기는 관념론자일 것이다. 이런 부류의 정치인들은 한국 사회에서 갈수록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머리 아프게 한다"는 말이나 듣기 십상이다. "말 없이 조용히 일해서 뭔가 눈에 보여줘라"는 질책을 받을 것이다.

숭례문 화재 사건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이 대체로 '눈에 보이는' 유형 문화재의 복원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시대 흐름인지 모르겠다. 빨리 복원하자, 성금을 모아 복원하자, 타고 남은 잿더미를 버리지 말고 따로 보관하자, 가리지 말고 눈에 보이게 해달라 등 의견들이 나왔다. 반면 이 사건의 '눈에 보이지 않는 메시지'에 대한 논의는 별로 없다. 한 노인네가 홧김에 불을 지르고 소방수, 문화재청 등이 바보같이 허둥대다 국보 1호를 태워먹은 어처구니 없는 사건으로 기록됐다.



그러나 이 사건을 보면서 섬뜩한 게 느껴진다. 사전에 2차례 답사까지 하고 열차 전복도 생각했다고 해서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과연 사회적 약자와 패자들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돌이켜 보면 불길한 생각이 엄습한다. "개천에서 용 못 나온다" "영어능력이 계급으로 굳어지고 있다" "이제 승자 독식 사회가 됐다" "엊그제까지 우리 집과 값이 비슷했던 강남아파트가 수십억원이 된 것을 보면 화병이 난다"는 얘기가 떠오른다.

어느 불교국가처럼 "아버지,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나요"라고 묻는 아들에게 "착한 일을 많이 해서 다음 세상에 부자의 아들로 태어나거라"라고 얘기해주는 문화적 완충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처럼 1, 2위 부자가 전 재산을 사회에 돌려주면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너희들도 노력하면 나처럼 될 수 있다"고 격려하며 부러움을 사는 전통도 아직 없다.

유엔이 발표하는 소득불평등지표 지니계수를 보면 미국(0.45·2004년 기준)이 한국(0.31)보다 훨씬 높지만 체감 불평등지수는 한국이 더 높을 수 있다. 숫자로 비교되는 실제 빈부 차이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체감지표'가 더 사회 구성원들을 갈라놓고 괴롭힐 수 있다는 얘기다.


서울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 있는 도시가 된다는 것은 '가장 살고 싶은 도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숭례문을 보기좋게 복원한다 해도 살기에 뭔가 불안하다면 제대로 된 복원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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