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케네디-포드대통령을 기대한다

머니투데이 이백규 산업부장 2008.02.04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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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규氣Up]삼성 특검..李 당선인은 용기있는 지혜의 선택을

한국판 케네디-포드대통령을 기대한다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보십시오."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시민생활의 바른 자세를 제시한 대통령 취임연설 못지않게 쿠바에 대한 '해상 차단' 결정으로도 유명하다. 결정은 미국-소련간 핵전쟁과 3차 세계대전을 막은 그 결과 못지않게 철저한 자기부정을 통해 여러 가지 부담스러운 것들을 슬기롭게 극복한 과정이 있었기에 더욱 돋보인다.



 케네디 취임 2년째로 동서냉전이 아직 한창이던 1961년 10월. 케네디는 미국 플로리다에서 90㎞ 떨어진 쿠바 북쪽의 소련 핵미사일 기지에 대한 정보를 보고받았다.

육해공 참모총장과 국방장관, 정치 참모들도 대부분 군사공격 내지는 준 전쟁 행위인 해상 봉쇄를 주장한다. 상원도 만장일치로 두둔하고 나섰고 여론도 그쪽 편이었다. 당시 미국은 그럴만한 파워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케네디는 1년 전 쿠바의 카스트로 축출을 위한 피구만 기습작전의 실패로 스타일을 구긴 바 있어 실추된 체면과 명예를 만회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또 1930년대말 영국 대사였던 부친이 독일 히틀러에게 대항하기보다는 끝까지 유화론을 편 과오도 있어 타협을 했다가는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만 할 상황였다. 야당과 여론, 그리고 개인적인 부끄러운 과거까지 겹쳐 공격 만이 최선의 선택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는 타협을 택했다. '해상 봉쇄'보다 한 단계 낮은 '해상 차단' 조치를 통해 여론과 우방의 협조를 받아가며 총 한번 쏘지 않고 쿠바 마사일을 해체시키는 데 성공했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케네디보다 훨씬 더 힘든 개인적 부담을 이겨낸 결정을 내린다. 포드는 우연히 대통령이 됐다. 1973년 10월 당시 부통령이 뇌물수수 혐의로 사임하자 닉슨 대통령은 그를 부통령에 지명했다.


이어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자 언론폭로전이 1년 내내 지속됐고 닉슨은 결국 사임했다. 이에 포드가 자동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한다. 그러나 닉슨은 도청에 이어 탈세행위가 적발되고 급기야 관련 다른 정치지도자들의 비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리더들의 권위는 훼손되고 나라의 품격은 더럽혀졌으며 시민들은 지도자를 우습게 여기는 망국병이 번지는 것을 느낀 그는 불구덩이에 자신의 몸을 던졌다. 취임 한달 만에 그는 닉슨이 재직시 저지른 모든 범죄행위를 조건 없이 전격 사면한 것이다.

지지율은 하룻밤 사이 70%선에서 40%대로 곤두박질치고 많은 이가 포드와 닉슨이 모종의 '거래'를 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또다른 게이트로 비화할 조짐을 보였다.

두달 후 의회 진상조사위원회에 출석, "맹세코 어떤 거래도 없었다"며 "미국은 악몽을 끝내고 새 출발을 해야 한다"고 진술했지만 그는 결국 1년여 후 낙선했다.

 그러나 포드는 먼 훗날 미국을 구한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된다. 2001년 케네디의 딸 캐롤라인은 '용기있는사람들상'을 포드에게 수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정치적 미래보다 나라를 더 사랑한 사람."

또 포드의 평생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오닐 전 하원 의장은 "하나님, 감사합니다. 남북전쟁 때는 에이브러햄 링컨을 내려주시고 워터게이트 때는 포드를 내려 주시니…"라고 말한다.

 이명박 당선인에게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연일 TV 9시 뉴스를 장식하며 우리 사회 주요 모순으로 떠오른 삼성을 안고 가느냐, 내치느냐. 그가 재벌 경영인 출신이기에 재벌을 껴안기는 더욱 힘들 것이다. 포드처럼 짜고 친다는 공연한 오해도 살 수 있다.

재벌 편을 드는 게 총선에 유리하지도 않다. 대중은 강자가 당하는 것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고 이는 표로 연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준웅 특검팀과 KBS, MBC는 삼성을 경쟁적으로 다루고 있다. 일부 사적 편취는 지적받아 마땅하지만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분야는 얽히고 설킨 당시 사회 생태계의 불가피한 생존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지 결코 공격과 매도, 더 나아가 단죄의 대상은 아니다.

미국의 두 대통령처럼 지금 당장은 욕을 먹을 망정 진정 나라를 위하는 멸사봉공의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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