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돈 못 막으면 외벌이만 못하다

배현정 기자 2008.02.14 11:40
글자크기

[머니위크 커버스토리]맞벌이의 손익계산서

"걱정 말고 낳으세요. 정부가 키워드립니다." 물론 새빨간 거짓말인줄 알았다. 그러나 얼마 전 둘째 아이를 얻은 정기준(가명ㆍ37) 씨는 요즘 육아 문제를 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아내가 전업주부를 선언한 것. 출산 후 복직을 준비하면서 힘들어하던 아내를 겨우 설득해 회사로 보냈건만 그러한 노력은 복직 후 일주일 만에 수포로 돌아갔다.

둘째 아이가 감기로 고열에 시달리자 아내는 육아와 가정살림에만 전념하겠다고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사실 '잘 나가는' 광고대행사 AD였던 아내는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정씨보다 소득이 높았다. 이제 홀로 생업 전선을 책임져야 한다니 그의 눈 앞이 깜깜하다. 정씨는 "안 그래도 언제 회사에서 잘릴까 불안한데 외벌이가 된다니 걱정이 태산"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아내라고 무턱대고 전업주부를 선언한 것이 아니다. 두 아이 양육비 부담에 사회 생활 유지에 필요한 비용까지 계산하면 맞벌이가 반드시 유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계산이다. 늘 피곤에 절어 "힘들다"는 말을 달고 살다 보니 아이의 정서가 걱정되기도 한다. 맞벌이의 손익계산을 끝없이 따져보게 되는 게 현실이다.

▲여성 배우자 소득, 남성의 25%에 그쳐



한 결혼정보회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20~30대 미혼남녀 10명 중 8명이 '맞벌이 부부'를 꿈꾼다. 특히 "결혼 후에도 맞벌이를 하겠다"는 여성(76.1%)보다 "배우자로 맞벌이를 할 수 있는 상대를 원한다"는 남성(79.9%)의 비율은 더 높았다.

맞벌이는 더 이상 일부 가정의 선택사항이 아닌 셈. '등록금 1000만원 시대', '너무 긴 노후가 축복이 아닌 걱정인 세대'에게 맞벌이는 대세로 자리잡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어떻게 혼자 벌어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겠냐"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맞벌이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1+1 = 2'. 덧셈의 공식에 따른 답은 그렇다. 그러나 맞벌이 가정의 대차대조표는 꼭 이 공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우선 소득부터 살펴보자. 2006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전국 맞벌이 가구의 소득은 월 평균 377만9700원. 이 가운데 여성 배우자가 벌어들인 소득은 남성의 2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경우 임시ㆍ일용직 비율이 높고 임금도 남성에 비해 여전히 낮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여하튼 외벌이 가구의 272만9400원보다는 105만300원이 높다. 그러나 여기에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면 계산 착오. 맞벌이를 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문제가 남는다.

◆외식비 등 새는 '돈 구멍'



'20대 55%, 30대 49%, 40대 48.6%, 50대 50.1%...'
도시근로자가구의 월 평균 식료품 지출액 중 외식이 차지하는 비중이다(통계청 2007년 1/4분기). 여기서 20대의 외식비 지출이 가장 높은 이유는 간단하다. 통계청 관계자는 "20대 가구의 경우 맞벌이 부부가 많아 외식비 지출 비중이 높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쯤 되면 젊은 맞벌이 부부는 외식산업의 발전에 기여하는 숨은 '일등 공신'이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통계 자료의 결과도 이와 일치한다. '통계로 본 여성의 삶' 자료를 보면 맞벌이 가구의 지출 가운데 외식비가 32만3000원으로 외벌이에 비해 39.5%가 많았고 교육비도 29만5900원으로 35.6%가 더 많았다.

이뿐 만이 아니다. 주부가 사회생활을 하려면 의류 구입비나 교류를 위한 '품위유지비'가 필요하고, 출퇴근에 따른 기본 교통비 등도 늘어나는 것이 상식. 맞벌이로 늘어난 수입을 다시 밖으로 흘려 보내고 있는 꼴이다. 맞벌이로 얻는 것과 잃는 것, 그 손익을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월급 명세서에 찍힌 금액이 고스란히 '내 돈'은 아니기 때문이다.



새는 돈 못 막으면 외벌이만 못하다


◆월급 절반 이상을 보육비로 지출하기도

자녀가 있는 맞벌이 가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담은 보육 문제. 주부가 취업 전선에 나서기 위해선 반드시 또 다른 여성의 노동력 투입이 전제돼야 한다. 사실 이 비용이 만만찮다.

가장 저렴한 놀이방,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경우는 월 25만~50만원 정도의 비용을 감당하면 되지만 가정에서 도우미 아줌마를 고용한다면 월 100만~150만원 가량의 고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에게 맡기는 경우에도 월 40만~80만원선의 시세(?)가 형성돼 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는 "직장 여성 20%의 월급 절반 이상이 보육비"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이러한 경제적 비용만으로 따질 수 없는 마음의 부담도 있다. 소중한 자녀와 보내는 시간의 포기를 어떻게 계산할 수 있을까. 학원강사로 일하는 박지영(35) 씨는 "출산 후 18개월에 보육기관에 아이를 맡기고 직장에 나가고 있다"며 "아침이면 '엄마 회사 가지마' 하며 우는 아이를 떼놓고 악착같이 직장생활을 해도 남는 게 있을까. 사랑하는 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토로했다.

◆전업주부 노동력 가치는 연봉 2500만원에 달해

맞벌이의 정확한 손익계산을 위해선 취업으로 잃어버린 기회 비용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취업으로 포기해야 하는 '전업 주부'라는 직업의 가치도 평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집에서 하는 일이 뭐 있어?" 이러한 생각은 구시대적 발상. 가사노동의 가치를 폄하한 측면이 크다.

미국의 개인재무상담업체 샐러리닷컴은 "전업주부는 연봉 13만8095달러(1억 2800만원)에 달하는 가사 노동을 하고 있다"는 발표로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어머니라는 직업은 가정부, 보육교사, 요리사, 세탁 기사, 수위, 운전기사(아이들 등하교), 심리 상담사 등 '10여개의 직업을 합친 것과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한국 주부의 연봉은? 삼성증권은 지난해 부부의 날(5월21일)을 맞아 전업주부의 노동 가치는 약 연봉 2500만원에 해당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교통사고 피해자인 주부가 받아야 할 보험금 자료 등을 통해 연봉을 산출했다. 이러한 주장이 정확한 계산은 아닐지라도 "밖에서 일하는 것만이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는 명제를 확인시켜준다.



하버드 법대 교수인 엘리자베스 워런과 그 딸 아멜리아 워런 티아기는 <맞벌이의 함정>(필맥 펴냄)을 통해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엄마가 노동력에 합류하면 그 가정은 인식하지는 못할지라도 상당한 경제적 가치를 지닌 무언가를 포기한 것이다. 그 무언가는 숙련되고 위급한 시기에 가정을 구원하기 위해 등판할 수 있는 여분의 숙련되고 헌신적인 성인을 말한다. 아이가 아프면 전업주부는 직접 아이를 돌볼 수 있고 아빠가 해고되면 엄마는 아빠가 다른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직장에 나가 돈을 벌어올 수 있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가정에서 재난에 대비할 안전망을 이미 활용해버린 맞벌이 부부의 경우 위기에 더 취약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비할 또 다른 안전망 '두번째 월급'의 효과적인 재테크가 더욱 강조되는 이유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