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뷰]버냉키 한 템포 늦었어!

머니투데이 박형기 국제부장 2008.01.23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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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뷰]버냉키 한 템포 늦었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드디어 전가의 보도를 꺼냈다. FRB는 22일(현지시간) 뉴욕증시 개장 직전에 0.75%포인트의 금리인하를 전격 단행했다.

금리인하 이후 유럽증시는 상승 반전했고, 미국 증시는 낙 폭을 크게 줄였다. 그러나 금리인하가 한 템포 늦었다는 감을 지울 수 없다.



지난 주말(18일) 미국 증시가 부시 대통령의 경기부양책에도 4일 연속 하락했을 때 금리를 전격 인하했더라면 그 효과가 극대화됐을 것이다. 늦어도 21일 금리를 인하했다면 아시아 증시가 이틀 연속 폭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이 사실상 침체에 빠졌기 때문에 30일 공개시장위원회(FOMC) 이전의 전격 금리인하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시점만 남아 있었다. 금리인하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 언제인가가 가장 중요했다. 어차피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면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처럼 시장의 예상보다 빠르고 과감하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미국 증시는 지난주 4일 연속 하락했고, 월요일(21일) 열린 아시아증시는 미국 경기 침체 우려로 일제히 급락했다.

21일은 마틴 루터 킹 데이였기 때문에 미국장은 열리지 않았다. 따라서 머니투데이 국제부 야근도 원래는 없었다. 그러나 기자는 후배를 수배해 야근을 시켰다. 하나만 보라고 했다. 전격 금리인하, 그것만 체크하라고 했다.

그러나 전격 금리인하는 없었고, 다음날인 22일 아시아 증시는 더 큰 폭으로 자유 낙하했다. 이틀 동안 10% 이상 폭락한 증시가 속출했다. 그동안 미국 서브프라임의 무풍지대였던 중국 증시는 이틀 동안 11.98%, 중국과 커플링된 홍콩증시는 13.67% 폭락해 최고 낙 폭을 기록했다. 홍콩에 상장된 중국 기업 지수(H지수)는 이틀간 18.19%나 폭락했다.


중국은행이 서브프라임에 노출됐다는 것이 주요 악재였다. 그러나 중국은행권의 서브프라임 관련 채권은 모두 합해도 100억 달러를 조금 웃도는 수준에 불과하다.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1조5300억 달러다. 시장의 신뢰가 붕괴됐기 때문에 이런 '깜'도 안 되는 악재에 증시가 과민반응을 한 것이다.

22일 기자는 야근자에게 금리를 인하하면 즉각 연락하고 혼자서 커버하기 힘들면 지원 요청을 하라고 했다. 예상대로 이날 버냉키는 금리를 인하했다.



변방증시의 한 기자가 전격 금리인하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으니, 이건 전격 금리인하도 아니다. 그린스펀의 전격 금리인하는 정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기습적으로 이뤄졌고, 효과만점이었다.

21일이 미국의 공휴일이었기 때문에 금리인하 발표를 하기에 부적절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버냉키가 망각한 것은 미국 FRB가 단순히 미국의 중앙은행이 아니라 세계의 중앙은행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친디아가 잘 나간다고 해도 세계증시의 향방은 결국 미국이 좌우한다.

21일 미국은 쉬지만 아시아와 유럽 증시는 열렸고, 모든 증시가 급락했다. 만약 버냉키가 21일 금리를 전격 인하했더라면 아시아증시가 이틀 연속 급락하면서 패닉에 빠지는 상황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전격 금리인하는 어느 정도 예상됐기 때문에 시장에 주는 감동이 적었다. 유럽증시는 영국과 프랑스가 2% 이상 반등했으나 독일증시는 0.31% 하락했다. 뉴욕증시도 0.5%포인트가 아닌 0.75%포인트의 금리인하에도 반등하는데 실패했다.

금리인하가 능사는 아니다. 일부에서는 치료제가 아닌 진통제를 투여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섣불리 금리를 인하하는 것보다 현 수준에서 금리를 동결하고 약간의 경기 침체를 감내하는 것이 미래의 재앙을 막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금리인하가 인플레이션을 키워 오히려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대형 참사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옳은 지적이다.

그리고 그린스펀의 초저금리 정책이 현재의 서브프라임 위기를 몰고 왔다고 주장한다. 결과론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린스펀이라는 노련한 조타수 덕택에 세계경제는 2001년 이후 초호황을 누렸다. 나중에 역효과가 예상될지라도 발등의 불은 일단 끄고 봐야한다.



더욱이 FRB는 실탄이 비교적 풍부하다. 지난해 미국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은 17년래 최고를 기록했다. 그러나 변동성이 심한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을 제외한 핵심 CPI는 전년보다 오히려 하락했다. 2007년 CPI 상승률은 4.1%로 전년의 2.5%를 크게 웃돌았다. 그러나 핵심 CPI 상승률은 2.4%로, 전년의 2.6%보다 낮아졌다. 이는 FRB가 금리를 인하할 여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이번 금리인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금리인하를 계기로 세계 금융시장이 충격에서 벗어나 제자리를 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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