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 넣고 "새 술은…" 빼고

머니투데이 박재범 기자 2008.01.14 14:40
글자크기

MB 첫 기자회견문 직전까지 고치고 또 고치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첫 신년 기자회견이 열린 14일 오전 8시43분 메일이 하나 들어왔다. 200자 원고자 21매 분량의 기자회견문.

찬찬히 읽고 있던 중 메일 하나가 또 도착했다. 제목은 '이명박 당선인 신년 기자회견문 수정본'. 받은 시간은 9시19분이었다. 인수위 관계자는 "단어 한두개 추가한 것일뿐"이라고 설명했다.



원본과 수정본을 급히 대조했다. 바뀐 곳은 단 한 곳. 정부조직 개편을 강조하는 대목이었다. 원본에 '중복적인 기능을 과감하게 통합해야 합니다'로 언급됐던 부분이 조금 바뀌었다.

핵심은 단어 '융합'의 추가였다. 수정본에는 일단 '지식기반경제에서 통합과 융합은 시대의 대세입니다'란 문장이 새로 들어갔다.



이어진 부분도 '중복적인 기능을 과감하게 통합하고 나뉘어진 기능들을 융합시켜야 합니다'라고 수정했다. '통합'만 강조할 경우 부처 통폐합으로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기자회견이 시작되기 10분전인 9시49분 '이명박 당선인 신년기자회견문 최종 수정본'이란 메일이 또 들어왔다. 이 당선인이 회견 15분전까지 막바지 손질을 한 결과물인 셈. 당선인 측근 인사는 "막판까지 공을 들였다"고 귀띔했다.

수정본과 최종본을 비교해 보면 이 당선인이 정부조직 개편과 관련 고심하고 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우선 이 당선인은 수정본에서 손댔던 그 부분에 다시 한번 펜을 갖다 댔다. 수정본에 '나뉘어진 기능들'로 표현됐던 문구를 '쪼개진 기능들'로 고쳤다. 통합을 강조할 수 있는 단어로 대치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정부 조직 개편에서 늦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부분도 수정됐다. 원본 표현은 "우리가 늦었습니다. 늦어지만 이번이 기회입니다" 정도.

그러나 최종본에선 "우리가 늦었습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우리는 선진화의 기회를 놓치게 될 것입니다"로 수위를 조금 높였다.

대신 "새 정부 출범하기 전에…" 문구 앞에 수식어로 추가했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이'란 표현은 최종본에서 삭제했다. 정권 교체를 계기로 조직을 바꾼다는 인상을 준다는 게 고려됐다는 후문이다.

실용정부의 모습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도 원본과 최종본간 차이가 드러났다.

이 당선인은 최종 연설을 통해 "이명박 정부는 국민을 섬기는 정부입니다"라고 말한 뒤 "정책 추진과정에서부터 이해당사자와 전문가,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추진해 나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원본에는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국민들이 반대한다면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돼 있었다. 다분히 한반도 대운하 사업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연설 말미 "하나가 되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대목에서도 "하루 아침에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지만 국민 모두가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우리가 바라는 선진화의 길을 앞당길 수 있습니다"는 문구가 추가됐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