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위, 인수위에 프러포즈…재경부 '당혹'

서명훈 기자 2008.01.0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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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위,금산분리 입장 180도 전환..7일 업무보고 앞둔 재경부 당혹

“금감위 너무 한 것 아니냐.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3일 금융감독위원회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업무보고가 끝난 직후 한 경제부처 공무원이 던진 말이다. 업무보고에 참석했던 이 관료는 돌변해 버린 금감위를 보면서 적잖이 당황했다고 한다.

그를 가장 놀라게 한 건 금산분리 문제. 이날 업무보고에서 인수위는 연기금에 대해서는 은행지분 소유를 허용하도록 하고 중소기업 컨소시엄 역시 은행지분 소유제한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에 대해 금감위는 별다른 이견을 표시하지 않은 채 ‘세부 추진계획을 수립해 보고 하겠다’며 사실상 수용의사를 밝혔다. 김용덕 금감위원장이 금산분리 완화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의사를 표시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이례적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9월 기자간담회에서 “어느 나라나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는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으며 법적·제도적 장치를 불문하고 은행을 산업자본이 소유하고 지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며 금산분리 원칙 고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강만수 인수위 경제1분과 간사 역시 금감위 업무보고 직후 “단계적 완화 방안과 (중소기업) 컨소시엄의 은행 인수를 허용하는 방안 등을 얘기했다”며 “(금산분리와 관련)기본적인 의견 차이는 없었다”고 말해 금감위가 인수위 제안을 수용했음을 암시했다.

당초 예상과는 달리 금감위가 금산분리 완화를 수용한 것은 명분 보다 실리를 택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인수위의 심기를 건드릴 경우 금융감독기구 개편 논의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와 대세를 거스를 수 있겠냐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전임 윤증현 위원장이 금산분리 완화를 계속 주장해 온 터여서 인수위 의견을 수용하기가 한결 수월했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금감위가 이처럼 백기를 들자 가장 난처해 진 곳은 재정경제부. 권오규 경제부총리가 최근에도 금산분리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데다 법개정 권한을 갖고 있어 인수위의 집중공세가 예상된다.

금산분리 완화를 수용하게 되면 지금까지의 입장을 뒤집는 것이 되고, 그렇다고 종전 입장을 고수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특히 금감위마저 금산분리 완화에 긍정적인 입장을 나타내 재경부로서는 입장을 고수할 명분이 딱히 없다.

재경부는 당초 업무보고가 3일에서 7일로 연기되면서 내심 쾌재를 불렀다. 금감위 업무보고 내용을 들어본 다음 보고 수위를 조절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기 때문.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놓고 보니 유리할 것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 됐다.

설사 금산분리 완화를 수용한다 하더라도 이미 금감위에 선수를 빼앗긴 터라 생색을 내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인수위 의견에 반대할 수도 없는 처지다. 재경부 관계자는 “차라리 업무보고를 먼저 하는 편이 나을 뻔했다. 보고 내용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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