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백불 시대-③]세상을 바꾼다

머니투데이 유일한 기자 2008.01.03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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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간 정치, 경제 등 역학관계 원유 생산에 따라 결정

국제유가가 100달러까지 급등하면서 경제 역량, 정치 위상 등 국제사회의 전반적인 역학관계가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3일 보도했다. 국제유가 상승에 따라 원유를 생산하는 곳과 그렇지 못하는 나라간 힘의 관계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배럴당 10달러이던 유가가 10년만에 100달러로 수직 상승하면서 비롯되고 있다. 전날 단 1계약이 100.0달러에 거래되며 100달러 시대를 열었다. 종가는 3.64달러 오른 99.62달러로 역시 사상최고가다.



국제사회 힘의 이동(파워 시프트)은 유가가 오를수록 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비싼 유가는 당장 항공과 자동차 업종에 부담을 주면서 변화를 재촉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정책 강화를 유인하고 원유를 대신할 대체에너지 개발 투자를 늘리는 역할도 한다.

◇중동 산유국들 "요즘만 같아라"..미국은 위상 약화
산유국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중동의 산유국들, 러시아, 베네주엘라, 아프리카 산유국들이다.



미국은 고유가에 신음하는 대표적인 나라다. 가솔린 가격 급등에 따라 미국인들의 전통적인 자동차 사랑은 식고 있다. 교외에 살고 있는 저소득층은 일을 하거나 도심에 진입하기 위해 더많은 비용을 내야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인한 신용경색과 저당권 포기(포클로저)가 속출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 경제에 고유가는 설상가상 그 자체다. 경기침체 불안감도 짙다.

원유가 언젠가는 바닥날 수 있다는 긴장감은 중동 국가들에게 특히 뚜렷하다. 그러나 성격이 다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는 호황때를 이용해 벌어둔 달러로 길을 닦고 학교, 공항 나아가 사막에 새로운 도시를 짓고 있다. 중동과 중앙아시아의 원유수출액은 올해 750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2001년의 4배다.

이들이 보유한 외환보유고는 국부펀드를 통해 세계 금융시장에서 막대한 파문을 던졌다. 맥킨지는 국부펀드를 포함한 오일달러 투자자들은 전체 3조8000억달러의 자산을 운용한다고 조사했다. 9000억달러 규모인 아부다비투자청(ADIA)은 일본은행(BOJ)의 규모와 맞먹는다.


ADIA는 지난해 말 신용경색으로 타격을 입은 씨티그룹에 75억달러의 자금을 투자, 1대주주에 올랐다. 런던에 소재한 디알로직에 따르면 역사적인 이 거래 이전에 중동의 오일 달러가 해외에 투자한 규모는 1240억달러로 추정됐다. UAE의 일부인 두바이는 나스닥증권시장의 지분을 대거 인수하기도했다. 이에따라 나스닥, 런던, 노르웨이증권거래소의 대주주가 됐다.

◇러시아 이란 베네주엘라도 고유가에 미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끄는 러시아의 파워는 세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푸틴은 유가의 힘을 빌어 자신의 체제를 공고히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변국과의 관계 설정도 유리하다. 코소보 독립과 미국과 유럽의 미사일 방어전략 같은 이슈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반대편에 있는 미국의 힘은 하루하루 약화되고 있다. 이란의 핵개발을 통제하려는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의 의도는 쉽게 먹히지 않는다. 단적으로 중국이 오일을 얻기 위해 이란과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나라들은 원유 생산 여부에 따라 경제성장이 결정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단은 다르푸르 학살이라는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오일 달러를 바탕으로 고성장하고 있다. 중국도 원유를 얻기 위해 미소를 보내는 상황이다. 수단의 수도인 카르토움에는 많은 투자자들이 줄은 선다. 미국의 경제 규제도 이전처럼 효과를 발휘하지 않는다.

반면 말라위 같은 아프리카의 빈국은 유가상승에 지옥과 같은 처지로 떨어지고 있다. 담배가 주 수출품인 이 나라는 유가가 10달러 오르면 GDP가 2.2% 감소한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이끄는 베네주엘라는 미국에 대한 노골적인 공세 강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중남미 국가들에 대한 지원을 통해 미국과의 연결 고리를 악화시키는 전략도 병행할 전망이다.

◇지금은 고유가 시대
유가가 어디까지 오를지 장담할 수는 없다. 비단 유가뿐 아니라 금에서 밀에 이르기까지 주요 소비재 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사이클 위에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추가상승이 가능하다고 무게를 둔다. 이에 비해 랠리가 막바지에 달했다는 지적이 없지는 않다. 조정론자들은 투기세력이 유가를 의도적으로 끌어올렸다고 주장한다.

분명한 것은 지난 20년간 유지된 저유가 시대는 오래전에 가버렸다는 점이다. 기름을 향한 전세계인들의 열망은 식지않고 있다. 반면 새로운 광구 개발은 미미하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사상최고가는 102.81달러로, 1980년 중동지역 긴장이 고조되며 명목상 배럴당 39.50달러로 치솟은 때 기록했다. 이에따라 일부 전문가들은 100달러 유가가 세계 경제를 침체로 몰고간다고 단언하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미국인들은 소비의 효율성을 높여 유가상승에도 불구하고 가처분 소득의 4%만 가솔린에 쓰고 있다. 80년에는 6%에 달했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다른 이머징마켓의 고성장에 따라 원유 수요는 한층 증가하고 있다. 70, 80년대 중동의 공급 차질로 오일 쇼크가 왔지만 지금은 수요 증가가 유가상승을 주도한다는 것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적지않은 긴장감도 나타나고 있다. 소비자들에게 막대한 보조금을 줬던 중국은 지난 10월 국내 수요를 줄이기 위해 가솔린, 디젤 가격을 10% 인상한다고 밝혔다. 이란과 베네주엘라 같은 나라들조차 보조금을 줄여 수요를 잡는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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