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참여정부는 실패했다"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08.01.01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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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 신년 인터뷰]<4>

국제 경제학계의 대표적인 '반신자유주의' 학자인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경제학부 교수)가 31일 참여정부에 대해 "실패한 정부"라며 거침없는 비판을 날렸다.

장하준 "참여정부는 실패했다"


장 교수는 신년을 앞두고 31일 머니투데이와 가진 이메일 인터뷰에서 "참여정부는 과거 청산에 치중하다 기업집단 등 좋은 것까지 파괴했다"며 "미래전략이라고 내세운 것은 동북아 금융허브론처럼 현실성없는 것들이었다"고 밝혔다.



장 교수는 또 "참여정부는 '탈권위주의'를 내걸었지만, 자신들이 꼭 하려고 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지극히 권위주의적으로 추진했다"며 "'탈권위주의'는 박약한 정책집행 의지를 정당화하는 구실이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평가했다.

다음은 장 교수와의 이메일 인터뷰 내용



-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신용불량자 200여만명이 빚을 갚을 경우 기존 연체기록을 모두 삭제하는 내용의 공약을 제시했다. 도덕적해이(모럴해저드)에 대한 우려가 있는데.
▶ 연체기록을 삭제해 주면 모럴해저드가 생길 소지가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신용불량자가 엄청나게 많으면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모럴해저드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책을 쓸 수 있다.

모럴해저드를 유발하는 제도를 포기한다면 보험, 파산법, 주식회사(유한책임 제도) 제도도 다 없애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정책이나 제도가 모럴해저드를 생산하느냐가 아니라, 모럴해저드에 따른 비용을 상쇄할만큼 좋은 점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특히 지금 우리나라의 신용불량자 문제는 과거 정부가 대출업, 신용카드업 등에 대해 적절한 규제를 하지 못한 책임도 크다. 이 책임을 생각한다면 정부가 신용불량자를 구제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앞으로는 대출 및 신용카드업에 대한 적절한 규제를 만들어 놓고 동시에 복지제도를 잘 정비해야 한다. 국민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준 뒤 그래도 빚을 무리하게 내서 쓰고 갚지 않는 사람은 처벌해야 한다.


- 사회안전망 확충이 중요텐데.
▶ 복지제도를 잘 만드는 것은 단순히 형평성을 위한 것 만은 아니다. 복지제도를 잘 만들면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 세계 최대의 복지국가를 가진 스웨덴, 핀란드 등의 나라들은 형평성은 말할 것도 없고 성장 면에서도 미국보다 성과가 뛰어나다.

브레이크가 좋아야 속도를 내 차를 몰 수 있듯,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있어야 국민들이 과감한 직업선택을 하고 변화에 과도하게 저항하지 않게 된다. 기본적인 의료, 교육 등을 보장해 주고, 실업보험과 노동자 재교육제도를 잘 만들어 구조조정 과정에서 실직을 한 사람들이 재기를 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기업들도 더 쉽게,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할 수 있다.

- 이명박 당선인은 임금, 보험 적용에 대한 정규직-비정규직 차별대우 철폐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가장 중요한 해결책은 투자를 활성화해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비정규직을 쓰는 것이 필요한 경우도 있는데, 이에 따른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복지제도를 잘 정비해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비율이 높지는 않지만 유럽나라들도 비정규직을 많이 쓰는데, 그래도 이것이 큰 사회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복지국가여서 비정규직 근로자들도 기본생활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 교육의 관치철폐, 대학의 학생선발 자율화 등이 이명박 당선자의 교육분야 공약이다.
▶ 복잡한 문제다. 한가지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어떤 정책을 쓰더라도 공부 잘하는 학생이 우대를 받는 원칙을 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부금 입학 같은 것은 절대로 안 된다고 본다.

- 차기정부의 바람직한 대북정책은?
▶ 북한을 몰아 붙이지 말고 계속 개방하는 쪽으로 유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 참여정부가 내년 2월로 임기를 마치게 된다. 총평을 한다면.
▶ 참여정부는 실패한 정부다. 과거 청산에 치중하다 보니 산업정책, 기업집단 등 과거 체제에서 긍정적인 것도 파괴했다. 미래전략이라고 내세운 것들은 동북아 금융허브론처럼 현실성없는 것들이거나 한미FTA처럼 미래를 생각할 때 좋지 않은 것들만 있었다.

참여정부가 초기에는 정부 운영 방식에서 투명성을 제고하고 권위주의를 탈피하는 듯 했다. 그러나 자신들이 꼭 해야겠다고 하는 한미FTA는 지극히 권위주의적으로 추진한 것을 보면 초기에 내걸었던 '탈권위주의'는 박약한 정책집행 의지를 정당화하는 구실이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 마지막으로 한국민들에게 당부하거나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 이명박 당선자부터 실용주의를 내걸고 있다. 우리 모두 고정관념과 명분에 얽매이지 말고 유연하게 사고하면서 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갔으면 한다. 그 정확한 방향과 실천 방법은 더 진지한 논의를 통해 정제해야겠지만, 논의를 할 때 "이것은 무조건 옳고, 저것은 무조건 그르다"는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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