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뷰] KIC는 뭐하나

머니투데이 박형기 국제부장 2007.12.2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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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뷰] KIC는 뭐하나


중국 중동 싱가포르 등의 국부펀드가 월가 주요은행의 지분을 싹쓸이 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월가의 주요 은행이 아시아 국부펀드로부터 자금을 수혈 받고 있다.

이에 비해 풍부한 외환보유액에도 한국 금융권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휘청거리는 월가를 공략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 특히 중국판 테마섹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중국투자공사(CIC)가 최근 50억 달러를 투입, 미국의 2대 투자은행인 모간스탠리의 지분 9.9%를 확보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비해 CIC보다 먼저 설립된 한국투자공사(KIC)는 이렇다할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국부펀드를 만들기로 한 뒤 올해 9월 정식으로 펀드를 출범시켰다. CIC는 최근 모간스탠리의 지분을 인수한 것을 비롯, 펀드가 공식 출범하기도 전인 지난 5월엔 미국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에 30억 달러를 투입해 지분 10%를 사들였다.

그러나 한국 정책당국과 금융권은 이런 기회를 수수방관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과거의 외환위기를 의식해 건전성에만 매달리면서 국제 금융권으로 진입할 수 있는 엄청난 호기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전문가가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는 한국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예견했음에도 굼뜬 KIC는 '월가의 파티'에 명함도 내밀지 못하고 있다.

기자가 기억하기로 서브프라임 사태를 가장 정확히 예측한 전문가는 한국 출신인 데이비드 전이다. 월가에서 40억 달러 규모의 아틀라스 캐피털을 운용하고 있는 그는 서브프라임 위기로 세계증시가 급락할 때인 지난 8월 28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서브프라임 부실로 촉발된 전세계 금융시장 혼란은 이제 1단계를 지나고 있다"며 "2단계 실물경제 위축을 거쳐 3단계 금융 회사들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가급락은 위기의 시작일 뿐이고, 주가하락으로 인한 소비 감소에 따라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며, 금융기관이 투자해둔 자산이 대거 하락, 금융기관의 대차대조표가 망가지면서 유동성 창출이 되지 않는 금융시스템의 위기가 올 것이란 얘기다.


그는 "이번 조정을 거치면서 이미 미국의 대형은행들의 밸류에이션이 한국보다 낮아졌다"며 "준비만 잘 한다면 한국 금융기관이 해외의 투자은행을 인수해 성장 동력을 찾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위해 정부가 나서 전략과 비전을 세우고 국민연금, KIC같은 정부기관이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기자는 서브프라임 위기가 한국에 기회이라는 그의 말이 좀 과장돼 보였다. 또 한국 출신이기 때문에 '립 서비스'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과 4개월 만에 그의 예견은 너무도 정확히 맞아 떨어지고 있다.



서브프라임으로 부실해진 월가는 최근 아시아 국부펀드의 수혈로 위기를 간신히 벗어나고 있다. 구미의 독무대였던 세계 금융시장에 아시아발 쿠데타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금융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중대한 시기에 한국 정부와 금융권은 손을 놓고 있다. 지금이라도 금융시장 성장의 모멘텀을 내부에서만 찾지 말고 해외로 눈을 돌여야 한다. 최근 한국은 경제 주체들의 '대차대조표'가 튼튼하다. 나라는 풍부한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고, 각 기업들은 엄청난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론스타가 한국에서 대박을 낸 것처럼 한국도 월가에서 대박을 낼 수 있다. 이 것이 론스타의 '먹튀'를 복수하는 가장 세련된 방법이다.

중국 CIC가 출범한 것은 올해 9월. 한국의 KIC는 2005년이다. 중국을 '만만디'라고 하지만 한국 KIC가 만만디이고 중국의 CIC가 '콰이콰이디(빨리빨리)'이다. 현대 경제는 속도전이다. 기회를 빨리 포착하고 과감하게 베팅하는 자만이 승자가 될 수 있다. 한국이 전열을 가다듬고 본격적인 해외투자에 나설 때쯤이면 월가의 파티가 이미 끝났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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