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2007-③]달러, 날개없는 추락

머니투데이 김유림 기자 2007.12.18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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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2007-③]달러, 날개없는 추락


올해 국제경제의 최대 패배자는 미 달러화였다.

달러화는 미국 경기성장 둔화와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신용위기로 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지면서 날개 없는 추락을 했다. 달러/유로 환율은 연중 최고 1.4873(11월29일)까지 상승해 1.5에 급접했고 이달초 반등으로 회복하긴 했지만 10월과 11월 두 달 동안은 캐나다달러 보다 가치가 낮아지는 굴욕을 맛봤다.

달러화 가치가 폭락하자 타지마할 같은 세계적인 관광지에는 '달러 사절'이라는 안내문이 등장했고 톱모델 지젤 번천도 모델료를 유로화로만 받겠다고 했다. 미국 팝가수 제이지는 자신의 뮤직비디오에서 달러가 아닌 유로 돈다발을 흔들어 보였다.



하지만 이런 굴욕은 대수가 아니다. 중동 산유국들은 달러화 연동 환율제(페그제) 폐지를 논의하기 시작했고 중국은 1조4000억달러를 넘는 외환보유액 구성 통화를 다변화하겠다고 선언했다. 달러화가 주도하는 세계 경제질서, 이른바 '팍스 달러리움(Pax Dollarium)'의 붕괴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리뷰2007-③]달러, 날개없는 추락


◇ 2007년은 달러 굴욕의 해

올해 달러/유로 최저 환율은 연중 최저 1.2892에서 최고 1.4873까지 15.4% 상승했다. 일부에서는 경기 침체와 신용위기로 달러화는 유로화에 대해 1.5달러 수준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달 초 다시 반등에 성공했지만 지난 9월에는 1달러의 가치가 캐나다 1달러의 가치보다 낮아지는 역전 현상까지 발생했다. 1976년 이후 31년 만에 처음있는 일이었다.


달러 약세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발생 이후 미국경제에 대한 믿음이 엷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 연준이 서브프라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금리를 내리자 달러는 급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미 연준은 지난 9월 서브프라임 위기 발생 이후 세차례에 걸쳐 모두 1%포인트의 금리를 인하했다. 미국의 금리인하로 미국과 주요국과의 금리차가 줄자 달러는 날개없는 추락을 계속했다.



달러 약세 때문에 유가가 오른다는 원망도 쏟아졌다. 중동 산유국들은 원유 수출 가격이 올라도 달러 가치가 떨어져 원유 가격 상승분을 손에 쥘 수 없다고 불평했다.

상품투자의 대가 짐 로저스도 당장 달러 자산을 팔라고 조언했다. 그는 "달러는 갖고 있을 만한 화폐가 못된다"며 "일본 엔화와 중국 위안화, 스위스 프랑화로 갈아타라"고 귀띔했다.

가치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은 일찌감치 달러 약세에 베팅해 달러화가 아닌 통화로 돈을 버는 기업들에 투자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심지어 18년 동안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었던 그린스펀 조차 CBS와의 인터뷰에서 "달러로 강연료를 받아도 괜찮다. 받은 달러를 곧 다른 통화로 바꿔 버리면 된다"고 말했다.

◇ 달러 페그제 폐지 논의도 본격화

미국과 첨예하고 맞서고 있는 이란은 이달초 원유 거래에서 급락하고 있는 달러화 결제를 완전히 중단했다. 쿠웨이트는 이보다 앞서 지난 5월 달러 페그를 포기했고 아랍에미리트연합(UAE)도 폐지를 고려하고 있다. 중동국가들의 달러 페그제 폐지 논의는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지위를 위협하기 충분하다.



중동 국가들이 페그제 폐지를 고려하는 것은 최근 유가 상승에 힘입어 막대한 오일달러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달러 페그제를 관리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미국 신용경색과 경기 둔화로 달러화 가치는 하락하고 있는 반면 이들 국가들의 경기는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이다. 하락하는 달러화 가치를 이들 국가들의 통화와 연동시켜 유지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다. 홍콩도 같은 이유에서 달러 페그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무성하다.

UAE와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은 현재 엄청난 달러 보유액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결정은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들 국가들이 달러 페그 종료를 선택한다면 달러 수요는 더욱 감소할 수 있고, 이는 외환 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또 달러 일변도에서 벗어난 외환보유액 다변화는 이들이 운용하고 있는 국부펀드 자산 포트폴리오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리뷰2007-③]달러, 날개없는 추락
◇ 달러 자산 청산이 약세 가속화

경제학자 리처드 던컨은 저서 '달러의 위기, 세계 경제의 몰락'에서 달러화 약세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예견했다.



그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와 세계 경제 불균형 확대가 필연적으로 달러화 가치의 하락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현재 상황은 그의 논리에 부합한다.

중국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미국 수출로 번 돈으로 외환보유액을 축적하고 쌓인 달러로 미 국채와 주식을 샀다. 수출 국가로서도 미 달러화가 쌓이기만 하면 환율이 떨어져 수출에 치명적이기 때문에 안전자산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미국의 채권과 주식을 샀다.

미국인들의 저축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해도 미국 경제가 호황을 보였던 데는 세계 각국이 미국의 부채를 사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는 미국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떨어지지 않고 미국 자산의 신뢰가 유지돼야 계속될 수 있다.

올해 터진 신용 위기는 이런 신뢰를 배반, 달러 자산의 청산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특히 올 중반 본격화된 신용 위기는 빚의 제국 미국의 초라한 결론을 보여주는 것과도 같다. 신용이 없는 사람에게도 집을 살 수 있는 채권을 남발한 대가로 금융시장은 초토화되고 연준은 금리를 내려서 신용 시장 경색을 풀어줘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투자자들은 서둘러 미국 자산에서 발을 뺐다. 신용위기가 고조됐던 지난 8월 외국인들은 장기 미국 국채와 기업채권, 주식 등에 대해 694억달러를 순매도했다. 이는 600억달러 순매수했을 것이란 월가 전문가들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결과이다. 순매도액은 러시아가 디폴트를 선언했던 지난 98년 이후 9년 만에 최대 금액이다. 해외자금의 이탈은 약달러를 심화시켜 미국 경제에 부담을 안기는 악순환의 고리가 된다.

◇ 기축통화 지위 흔들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달러가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단번에 내줄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기축통화는 미래 가치에 대한 광범위한 신뢰를 전제로 높은 통화가치가 요구되며 교환이 용이하고 예측가능성이 높아야 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물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어야 하며 고도로 발달한 금융시장이 필요하다.

통화발행국의 경제 규모가 절대적으로 크고 통합돼 있어야 하는 것도 전제 조건이다. 만일 유로화가 이런 기준을 충족한다 해도 기존 통화를 사용하려는 관성도 무시할 수 없다.

달러 약세로 세계 각국이 달러에 대한 도전과 위협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달러 자산이 전세계 통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5%로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유로화 외환 보유액 비중은 지난 2002년 19.7%에서 증가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직 26% 수준에 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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