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6.3동지… 이명박과 이부영

머니투데이 배성민 기자, 양영권 기자 2007.12.07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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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BBK의혹 이명박 후보 혐의없음..법원, 알선수재 이부영 구속수감

거물 정치인 2명이 하루를 사이로 검찰과 법원발 '빅뉴스'의 주인공이 됐다. 5일 'BBK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무혐의 처분을 받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와 이튿날 제이유그룹 주수도 회장에게서 돈을 받은 혐의로 법정구속된 이부영 전 의원이 그들이다.

엇갈린 6.3동지… 이명박과 이부영


둘은 이 후보가 현재 가장 주목받는 정치인으로 여러 의혹에 대한 사실상의 면죄부를 받은 상태고 이 전 의원은 영어의 몸이 됐다는 점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두 사람의 출발은 사실상 같았다. 3공화국 초기 1964년 당시 20대 초반의 열혈 대학생으로, 한일 국교정상화 반대 시위로 계엄령 정국을 야기했던 '6.3 사태' 주역들이었던 것. 이 후보가 41년생, 이 전 의원이 42년생으로 나이도 한살차이다.



그뒤 양자는 사회인으로서는 서로 길을 달리한다. 이 후보는 현대그룹의 울타리에서 30년 가까이 일한 반면 이 전 의원은 동아일보를 거쳐 재야운동을 벌였다. 이 전 의원은 87년 민주화 운동 당시 박종철군 고문 치사 사건의 전모를 정의구현사제단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이들은 다시 92년 제도권 정치인(14대 국회의원)이 되면서 다시 만났다.

이 후보는 당시 민자당 전국구 의원이었고 이 전 의원은 야당인 민주당 지역구 의원이 됐다. 당까지 함께 하게 된 것은 97년 민주당이 여러 과정을 거치며 민자당의 후신인 한나라당과 합치면서부터였다.



엇갈린 6.3동지… 이명박과 이부영
하지만 이 전 의원이 청년 시절에 겪었던 시련을 이 후보는 정치인이 되면서 겪었다. 선거법 위반.범인 도피 등으로 벌금형을 선고받고 정치적 휴지기에 들어가기도 했다.

샐러리맨의 신화긴 했지만 전문 경영인이었던 이 후보는 자신의 돈으로 창업하겠다는 사업상의 성공으로 재기를 모색했다. 주장이 엇갈리고는 있지만 BBK, LKe뱅크, e뱅크증권중개 등이 성공수단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이 후보의 6 ~ 7년여 뒤 발목을 잡게 된다. 동업자(?) 김경준의 귀국 이후로 여타 후보 모두의 공박을 받게 되지만 검찰은 '혐의 없음' 결정으로 결국 이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공격자의 주장대로라면 증거를 하나도 남기지 않는 완벽한 완전 범죄의 결과일 테고 이 후보측 설명대로라면 무고한 모함에 대한 결백의 입증이다.

이 전 의원은 2003년 한나라당에서 현재의 여권으로 옮기는 정체성 회복에 나서지만 2004년 총선에서 낙선한다. 그리고 사회운동으로 다시 돌아왔고 두달 뒤 장준하기념사업회를 맡게 된다.


사업회의 재원 마련이 쉽지 않자 그는 여러 방법을 모색했다. 만군 대위 출신 권력자 박정희에 비견해 광복군 장교 출신으로 재야 대통령이라고도 불렸던 장준하는 이제 잊혀진 인물이 되었기 때문일까. 실제로 장준하의 아들도 논란은 있지만 사기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이 전 의원은 주수도 회장의 돈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법정 공방 끝에 구속 수감됐다.

열혈청년이었던 6.3 동지 두 사람의 운명은 앞으로 더 극명히 갈린다. 두 사람은 6.3사태 당시에는 아스팔트 위에서 애국가를 나란히 불렀겠지만 내년 2월이 되면 교도소와 국회 앞(취임식 장소)이라는 다른 공간에서 멀리 떨어진채 같은 노래를 듣게 될런지 모른다. 장준하로 상징되고 이부영이 한때나마 떠받쳤던 민주화운동은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됐고(?) 일단은 성공하고 부자되자는 이명박 후보의 구호는 귀에 쟁쟁한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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