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K 수사결과와 정치권의 코메디

머니투데이 홍찬선 기자 2007.12.05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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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는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린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5공화국 청문회'에서 했던 말이다. 권력의 서슬이 시퍼렀던 시절, 정권에서 오는 요청(바람)을 거절할 수 없어 받아들였다(갈대가 흔들렸다)는 뜻이었다. 그런 '바람'에 한이 맺여서였을까, 그는 1992년 대선 때 직접 국민당을 만들어 후보로 나서 한때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권력에 약한 것이 사람일까. 검찰이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에 대한 이른바 'BBK 주가조작 의혹'이 '협의없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한 날,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가 이 후보를 돕겠다고 나섰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에 따르면 "김 전 총재가 강 대표에게 전화를 해 자신도 최선을 다해 정권교체를 위해 돕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 후보의 BBK 연루 의혹이 '무혐의'로 결론난 데 대해 "한나라당 전 당원들이 이 후보를 믿고 힘을 합치고 뭉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사필귀정으로 오늘 결과가 나왔다"며 "축하한다. 정권교체를 위해 돕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반면 이 후보와 한나라당 대선후보를 다투었던 박근혜 전 대표는 한발 앞서 이 후보 지원 유세의 강도를 높였다. "BBK 수사결과를 지켜본 뒤 다시 판단해 봐야 한다"며 다소 유보적인 행보를 배제하지 않았지만 11월말부터 화끈하게 이 후보 지원유세를 펼쳐왔다. 특히 검찰 발표 전에 이미 수사결과 이후의 유세 일정도 잡아, 경선에 승복하고 당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다는 원칙정치에 충실하다는 점을 홍보하는데도 성공했다.



앞서 가느냐 뒤에서 가느냐의 차이가 있지만, 박 전 대표와 JP는 일단 바람부는 대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상황판단을 잘못한 심대평 국민중심당 대표와 무소속으로 뛰고 있는 이회창 후보 진영은 다소 억지스런 주장을 펴고 있다.

이회창 후보의 전략기획팀장을 맡고 있는 강삼재 전 의원은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 후 이명박 후보와 참여정부의 '막후거래설'을 제기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과 이명박 후보의 최측근이 지난 2일 긴급회동했다'고 보도한 한 인터넷언론을 들며 "이명박 후보와 현 정권과의 관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검찰 수사 등 최근 상황이 한나라당의 단독적인 행위로는 보이지 않는다"며 "이명박 후보가 무능한 좌파정권과 손을 잡은 것이 여실히 드러난 만큼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 언론은 보도가 문제되자 해당 기사를 삭제했다. 사실확인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주장만 제기한 셈이다.


대통합민주신당도 이날 'BBK 특검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규탄대회를 열었다. "검찰수사 결과가 대단히 미흡하고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진술을 거의 수용한 수사결과를 내놨다. 검찰의 수사가 모종의 힘에 의해 축소·은폐·편파적으로 이뤄졌다"는 주장이다.

반면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은 '대한민국에 법은 살아 있다'며 검찰 수사결과에 대해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있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편향성을 갖는다. 2005년 서아시아를 강타했던 '쓰나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목숨을 잃은 반면 짐승들은 거의 죽지 않았다고 한다. 동물에게는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기 때문에 위험이 닥칠 때 그것을 사전에 알아채는 '예지능력'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사람도 짐승처럼 예지능력이 있었지만, 과학기술의 발전과 편향성의 강화 등으로 예지능력을 잃어 집단 참사라는 비극을 맞았다고 한다.

검찰의 수사발표를 놓고 자신의 정치적 견해나 이해득실에 따라 보고 싶은 것만 보고자 하는 것은, 사람이 동물로서 갖고 있었던 예지능력을 다시 한번 잃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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