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준, 영화보고 범죄 모방"

머니투데이 양영권 기자 2007.12.05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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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BBK 수사 뒷얘기들.."형량협상 수시로 요청했다"

주가조작 및 횡령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김경준(41) 전 BBK 대표는 영화에서 범죄의 힌트를 얻은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밝혀졌다. 김씨의 허위 진술로 시작해 결국 김씨의 진술 번복으로 막을 내린 BBK 수사는 이밖에도 많은 뒷얘기를 낳았다.

◇주가조작은 모방범죄? = 검찰은 김씨의 범죄 수법을 설명하며 2000년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보일러 룸'을 소개했다. '보일러 룸'은 주식시장의 사기 브로커 조직을 뜻한다.



김씨는 2001년8월 이 영화의 주연배우인 '지오바니 리비시'라는 이름으로 여권을 위조할 정도로 영화에 심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옵셔널벤처스 사무실의 김씨가 사용하던 책상에서 이 영화의 DVD를 압수하기도 했다.

이 영화에는 유령회사의 주식 매매 알선을 업으로 하는 JP말린 증권사에 취직한 주인공 세스(지오바니 리비시)가 회사에 의심을 품고 주식의 발행 회사인 '메드 패턴트 테크놀러지(Mes Patent Technologies)'를 찾아가 유령회사를 확인하는 장면이 나온다. 김씨 또한 주가 조작을 위해 유령회사를 설립하면서 이 회사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고 검찰은 밝혔다.



또 이 영화에서 사장이 주가조작한 것이 들통날 걸 대비, 이사할 준비를 하기도 하는데, 김씨 역시 도피를 시도하던 중에 수사기관에 1차 적발된 적이 있다고 검찰은 밝혔다.

한편 한나라당 박계동 공작정치분쇄범국민투쟁위원회 위원장도 지난달 김씨의 수법과 비슷하다며 이 영화를 들기도 했다.

◇회사명을 보면 주인이 드러난다 = 김씨는 한국에 송환돼 처음 검찰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BBK를 이름을 지은 경위와 관련, "'뱅크 오브 바레인(Bahrain) 앤드 쿠웨이트(Kuwait)'의 약자를 따 BBK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이 후보가 중동에 관심이 많아 이 후보가 직접 지었다는 것. 그러나 이같은 진술은 이 후보를 엮어내기 위해 꾸민 것이며, BBK 설립 때 발기인으로 참여한 밥(Bob) 오, 김씨의 아내 이보라(B), 김경준(K)의 이름에서 각각 한글자씩 따온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김씨가 이 후보와 함께 만든 LKe뱅크는 이명박의 'L'과 김경준의 'K'를 따와서 이름을 지었다.



◇김경준은 장사꾼, 형량도 흥정? = 김씨는 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제출한 한글 이면계약서가 거짓이라는 물증이 드러나자 돌연 형량 흥정을 해왔다고 한다. 김씨가 지난달 23일 작성해 가족에게 건넸다는 자필 메모에서 "검찰이 이 후보에게 유리한 진술을 해주면 구형을 낮게 하겠다"는 취지로 밝힌 것과는 상반된 사실이다.

검찰은 "김씨가 진술에서 여러 모순점이 드러나니까 느닷없이 '나는 장사꾼이다. 장사꾼은 계산을 따진다. 제가 사문서 위조한 것은 인정할테니까 불구속으로 해 달라'고 제의해 왔다"고 전했다.

검찰은 특히 "김씨가 형량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며 "처음에 자신의 형량을 스스로 판단하기로 12년형이라고 했으나 그 후 변호인과 7년, 10년, 3년 등의 얘기를 꺼냈다고 한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수시로 호송차 안에서 수시로 형량협상을 요청했고, 변호사나 검사가 "우리나라는 플리바게닝제도가 없다"고 하면 "왜 없느냐 우리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검찰은 20여일간 아침 일찍부터 자정까지 조사하면서 꿈과 야망, 좌절 등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얘기를 나눌 정도로 배려해준 상황에서 김씨의 자필 메모가 보도되자 무척 당황했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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