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런티어리포트]카자흐 위기는 없다

윤영호 카자흐스탄 통신원(세븐 리버스 캐피털 부사장) 2007.10.3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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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런티어리포트]카자흐 위기는 없다


최근 일부 국내외 신문지상에 카자흐스탄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가 나오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세가지입니다. '은행이 큰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크게 하락하고 있다. 식료품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은행의 현황



카자흐스탄 은행은 지난 3년간 5.7배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습니다. 해외에서 8-9%에 자금을 가져와서 국내에서 15-16%에 부동산 관련 대출을 했습니다. 6%의 손쉬운 순이자마진을 달성했고, 은행의 이익구조는 매우 탄탄했으며, 자산은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큰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자산과 부채의 비매칭 문제입니다. 부채는 3-5년짜리인데 자산은 10-15년짜리입니다.

이러한 자산-부채의 비매칭 문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계기로 터져 나왔습니다. 해외 채권에 대한 차환이 어려워진 것입니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었고, 해외 차입금에 대한 지급준비율을 5%에서 10%까지 올리는 조치를 단행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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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해외 차환이 일시에 어려워지면서, 문제가 불거지게 되었습니다. 환율도 급등하였고(121 -> 127), 해외 차입이 많은 은행들의 주가가 40% 하락하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정부가 4조원의 유동성을 제공하고, 추가적인 유동성 문제에 대비하여 4조원의 펀드를 조성했습니다.

환율은 다시 121원으로 안정 되었고 주요 은행들의 주가도 반등했습니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은행은 부실채권 문제를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 듀레이션의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펀더멘탈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실물 경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카자흐스탄 은행의 대출이 2.44라면, 국내 예금은 1입니다. 1.44는 해외채권 발행을 통해 조달 된 것입니다. 이제 그 갭을 줄여야 합니다. 금리를 올리는 것이 하나의 방책입니다. 대출금리 기준으로 금리는 3% 정도 상승했습니다. 그렇다고 단숨에 국내 대출과 예금의 괴리가 극복 되지는 않습니다. 결국 신규 대출을 줄일 수 밖에 없고, 부동산 관련 대출이 줄어 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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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에 파급효과

바로 부동산 시장에 그 영향이 전달됩니다. 대출에 크게 의존하는 시행사와 시공사는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비핵심 지역의 부동산 가격은 고점대비(지난 2월) 30% 가량 하락했습니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하락이 실제로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은행의 부동산 담보 비율은 30~40%로 매우 보수적이었습니다. 부동산 고점에(지난 2월에) 이루어진 대출도 부실화 될 우려는 매우 적습니다. 부동산 거래는 눈에 띠게 줄었지만, 일반인들의 자금력은 매우 높아 보이고, 자동차 판매량은 오히려 증가했고, 일반인들의 소비 수준이나 체감 소비자 신뢰지수도 여전히 높습니다.

그런데 왜 한국 사람들의 눈에, 특히 한국 기자의 눈에 카자흐스탄은 부정적으로 보일까요? 은행이 부동산 관련 대출을 줄이면서 직격탄을 받는 것은 높은 은행 차입에 의존하는 영세 시행업자와 영세 건설업자들입니다. 카자흐스탄에 진출한 한국인들의 대다수는 소규모 시행업자와 건설업자입니다.

이들은 지주와 공동으로 땅을 담보로 대출을 일으켜 부동산을 개발해 왔습니다. 그러나 은행이 부동산 대출을 줄이면서 당장 이들의 일감이 없어졌습니다. 이들이 느끼는 카자흐스탄 상황은 매우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카자흐스탄은 더 이상 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의 시행업자들에게 카자흐스탄은 더 이상 기회의 땅이 아니며, 이미 부도난 국가와 다름없습니다.



적은 자기자본으로 과도한 레버리지를 일으켜 사업하는 사람들은 작은 위기에도 퇴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카자흐스탄에 취재 온 기자가 한국의 시행업자들 말을 듣고 기사를 쓰는 것은, 한국에 취재 온 외국 기자가 한국의 택시기사 말만을 듣고 한국경제는 공항상태라고 쓰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한국의 택시기사에게 한국 경제에 대해 들으면 한국은 이미 오래 전에 부도난 국가입니다.

10월 들어 부동산 가격은 오히려 반등하고 있으며, 수요와 공급을 상징하는 주택 임대료와 오피스 임대료는 어떤 조정 국면 없이 견조한 가격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업기회를 발굴하러 오는 수많은 비즈니스맨들 때문에 호텔 가격은 나날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에 300불하던 5성급 호텔이 지금은 600불입니다. '자본주의 경험이 많은' 한국사람들은 '그게 말이 되냐? 뉴욕이 호텔비가 얼만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험이 적은' 여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아니냐? 수요를 줄이기 위해서 카자흐에 오지 말던가, 오려면 호텔을 비행기에 싣고 오라!'

부동산 가격이 향후 어떻게 될지 그거야 어찌 알겠습니까? 은행이 부동산 관련 대출을 줄이고 있으므로 급격한 가격의 재반등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허나 부동산에 대한 기본적 수요는 충분합니다.

위기를 기회로



은행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소형 은행들은 위기를 겪습니다. 카자흐스탄에는 34개의 은행이 있습니다. (최근의 유동성 위기 때문에 줄은 것이 아니라 위기 이전에도 34개, 현재도 34개입니다.) 시티은행, ABN 암로, HSBC, 유니 크레디트 등이 진출하면서 카자흐스탄 은행들은 글로벌 은행들과 경쟁해야 합니다.

작은 은행들이 살아 남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으므로, 은행의 M&A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현재의 유동성 위기는 은행의 M&A를 가속화시킬 것입니다.

국내 은행도 카자흐스탄 대형은행을 인수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위기에 어떠한 기회가 있을지 면밀히 살피는 것이 전문 투자가입니다.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싼 값에 현지 은행을 인수할 수 없을까 기회를 봅니다. 글로벌 부동산 투자기관은 활발하게 카자흐스탄 관계자를 만나며, 가격을 협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카자흐스탄이 큰 위기가 아니므로, 은행이든, 부동산이든 큰 바겐세일은 없습니다. 위기를 즐기고 싶어도 크게 즐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카자흐스탄에는 여전히 돈이 많습니다. 외환보유고는 GDP의 51%에 이르고, 카자흐스탄의 교역조건은 역사상 최고점에 있습니다. 카자흐스탄 산업의 두 축인 원자재와 농산물 가격이 모두 역사적 최고점에 있습니다. 기업들의 이익은 매우 높습니다.
모간 스탠리 보고서에 잘 나와 있듯이 은행이 해외차입이 늘어 난 만큼, 은행 주주의 자기 자본 투입 또한 증가하여, 자산 대비 대출 (LOAN/EQUITY)의 비율은 크게 증가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점이 지난 10년간 이머징 마켓에서 발생한 금융 위기와 현재의 카자흐스탄 상황이 다른 이유입니다.

위기는 오로지 비관론자들에 의해 증폭될 뿐입니다. 최근에 카자흐스탄 은행의 유동성 위기와 부동산 위기를 식료품 가격 상승과 연관시킨 기사가 있었습니다. 위기가 빵과 연결될 때, 불안감은 배가 된다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최근에 카자흐스탄에서 밀가루 가격, 빵 가격이 크게 상승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카자흐스탄 화폐의 가치가 크게 하락하는 인플레이션 국면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빵 가격이 크게 올랐던 때, 빵을 살 수 없었던 때, 바로 소련이 붕괴하던 때를 기자가 연상했던 것 같습니다.

↑ 카자흐스탄의 원유 수송관↑ 카자흐스탄의 원유 수송관
원유와 지하자원 역사적 최고점..카자흐에게 최적

'유가 90불 시대에 카자흐스탄 국민이 빵을 걱정한다'는 것은 '오버 센스를 넘어 잠바 센스'입니다. 밀가루 가격과 빵 가격이 크게 상승한 주요 원인은 카자흐스탄의 곡물 수출이 늘면서입니다. 카자흐스탄은 세계 6위의 곡물 수출국입니다. 세계적으로 곡물 생산량이 지난해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곡물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글로벌 곡물 가격과 카자흐스탄 곡물 가격의 괴리가 크게 발생했습니다. 수출업자들이 국내 소비량을 대규모 수출로 전환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곡물 생산은 지난해 대비 13% 증가했지만, 수출량은 204% 증가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빵 가격이 오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과정에서 일부 소외계층은 대단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나 국가 전체적으로 전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님은 자명합니다.

유가가 19불 이하일 때, 카자흐스탄의 원유는 그저 쓰레기일뿐입니다. 유가가 90불이면 그 쓰레기는 71불 짜리 황금 덩어리가 됩니다. 넓은 카자흐스탄의 땅은 모두 불모지로 그저 재앙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재앙 속에 우라늄이 있고, 구리가 있고, 철광석이 있습니다. 쓰레기가 황금으로 변하면서, 쓰레기를 주어 먹고 살던 사람들이 백만장자가 되었고, 엉겁결에 그 쓰레기 더미에서 놀던 일부의 외국인들도 비즈니스의 기회를 누렸습니다. 수십년간 진행되었어야 할 부동산 개발도 지난 3년에 응축적으로 일어 나면서, 놀라운 성장과 스피드를 보였습니다.

그런 스피드가 계속 될 것으로 믿었다면, 그 믿음이 비정상적인 것입니다. 그 스피드의 슬로다운을 공황으로 이해한다면 그런 사람에겐 어디인들 공황이 아니겠습니까? 앞으로 카자흐스탄에서 쓰레기가 황금으로 변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땅에서 아무 거나 주어도 황금이 쥐어지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길에 황금이 떨어져 있지 않다고 해서, 이 땅에 먹을게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카자흐스탄에만 너무 가혹한 잣대를 대는 것이 아닐까요?



은행의 높은 순이자마진(NIM)은 줄어 들 것이고, 은행은 M&A를 통해 상위 6-7개만 살아 남을 것입니다. 건설업자도 높은 레버러지를 일으키는 자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지난 3년간 성장의 혜택을 누렸던 은행과 건설업은 이제 성숙 단계에 진입해 있습니다. 그에 반해 다른 산업 분야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에 있습니다. 보험업, 증권업, 자산운용업, 서비스업, 유통업 등 이제 우리가 눈을 돌려야 할 분야가 많습니다. 건설업이, 시행업이 성숙기에 도달한다고 해서 전 산업이 다 성숙기에 도달하는 것은 아닙니다. 건설의 시각에서 세계를 보는 것을 넘어, 진정한 해외투자를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이메일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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