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한숨이 공존하는 미완의 타운

머니위크 배현정 기자 2007.10.24 16:31
글자크기

[머니위크]은평뉴타운

"자연과 하나되는 공원 속 생태도시" , "고품격 생태 전원도시" .
10월 16일 오후.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인근에 내리니 드넓은 아파트 공사 현장이 나타난다.

자연친화적 여건을 강조한 문구가 커다랗게 새겨진 간판들이 공사 현장 앞에 즐비하다. 그 간판 속에서는 엄마와 함께 즐겁게 테니스 치는 아이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어르신의 모습 등이 연못이나 숲을 배경으로 잔잔하게 펼쳐져 있다. 생태 도시의 낭만이 폴폴 풍겨 나온다.



분양가 상한제를 피해가는 하반기 최대의 분양 잔치가 벌어질 것으로 주목 받는 은평 뉴타운이다. 분양 공고를 목전에 두고 들썩일 것이라 예상됐던 이 곳은 예상외로 고요했다. 그러나 물밑에서의'딱지'(원주민 입주권) 거래에서부터 프리미엄 계산까지 '부동산의 로또'를 향한 사람들의 기대감과 원주민의 한숨은 소리없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 입주권 1억 5000만원 '물밑 거래'



"프리미엄은 112㎡(34평) 기준으로 최고 1억 8000만원까지 치솟기도 했지만, 현재는 1억 3000만~1억 50000만원 정도로 보고 있어요."(E부동산 대표)
"입주권의 경우 (원주민의) 보증(담보)이 중요하죠. 보증이 없으면 최저 7000만~8000만원에도 거래돼요. 하지만 보증이 있으면 가격은 두 배로 뛰죠. 아니 가격은 얼마라도 좋으니까 보증만 있다면 입주권을 구해달라는 사람들도 있어요."(S공인중개사 대표)

가을 바람이 불면서 은평 뉴타운 주변의 부동산 중개업소엔 문의가 부쩍 늘었다. 분양을 앞둔 지역이 으레 그렇듯이 새롭게 가게 문을 연 곳도 하나둘 생겨났다. 그러나 분양이 코앞에 닥친 지금은 다들 관망세.

부동산에서도 딱히 '할 일이 없어서인지' 가게 문을 걸어 잠그고 외출했거나, 아예 상당기간 문을 열지 않았는지 가게 앞에 청구서 등이 수북히 쌓여 있는 곳도 눈에 띄었다.


지축역에서 은평뉴타운 지역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고양시 지축동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상담차 방문하는 사람들은 하루 4~5팀 이상 되지만, 지금 거래는 불법이라 부동산 중개업소는 개점 휴업 상태인 곳이 많다"고 말했다.

방문 상담이든 전화 문의든, 관심사는 딱 두 가지로 압축된다. 분양 받은 후 전매시의 차익과 원주민 입주권 거래 시세 등이다. 당연히 전매 제한을 피해가는 1지구에 문의가 집중돼 있다. "집은 사는 것에서 사는 곳으로 바뀝니다"는 SH공사의 구호가 무색하게 사람들의 관심은 오직 '투자 가치'에 모아져 있었다.



◆ 중소형평수는 팔려고 산다

"청약가점이 높다며 투자가치를 알려달라는 문의가 줄을 이어요. 55점 이상이면 당첨 확률이 높다고 보는데, 65 ~ 70점 정도 되는 사람들의 상담이 꽤 많아요. 분양가 상한제의 적용을 피하는 마지막 기회니까 당연히 청약을 하지 않겠어요? 일단 되면 최하 1억원은 버는데요."

특히 청약자들의 관심이 쏠려있는 평형은 112㎡(34평). "중대형 평수야 실수요자가 관심을 갖는데 반해 중소형 평수는 팔려고 산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었다.



관계자들의 설명은 이렇다. 112㎡(34평)의 경우 분양가를 평당 1100만원으로 예상한다면 3억 7400만원 가량 된다. 하지만 대개 이들 평형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자산이 많은 중장년층이 아니라 30,40대의 비교적 젊은 경제인구다.

한창 경제활동을 하는 이들이 굳이 교통이 불편한 은평 지역에 거주하리라고 보기는 사실상 어렵고, 대개 1억 5000만~2억원 가량의 대출을 안고 구입하는 상황이라 막대한 이자를 내면서 오래 매물을 갖고 있을 이유도 없다. "벌써부터 당첨되면 팔겠다며 연결을 부탁하는 경우가 상당수"라고 부동산 관계자들은 전했다.

일반 분양을 받는 것보다 약 30%는 싸다는 점에서 원주민의 입주권은 당연 불법임에도 선호 대상이다. 한 부동산 대표는 "이 동네에서는 원주민 입주권의 80%는 이미 팔렸다고 보면된다"며 "은평 원주민의 경우 원래 다른 지역 철거로 이 일대에 자리잡았던 도시 빈민들이 많은데, 보상을 받는다 해도 과연 뉴타운에 들어갈 수 있는 돈을 어디서 마련하겠냐"고 말했다.



그렇다고 뉴타운에 들어갈 능력이 없는 원주민들이 입주권을 반납할 리는 만무할 터. 그래서 이러한 속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일가친척까지 동원해 원주민 입주권을 사들였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분명 '사고'(단속에 적발되거나, 민형사 사건의 발생 등)가 날 겁니다. '떳다방'의 경우 입주권 매매는 '팔고, 되팔고, 또 팔고'를 원칙으로 하죠. 그러니 매도자가 매수인을 모르는 상황이 나올 수 밖에 없죠."

사실 입주권이란 처음부터 '공중'에 떠 있는 허상의 존재. 불법 거래를 했으니 입주권을 샀다고 공증을 받을 수 없다. 대신 원주민이 담보를 제공하지 못할 경우 매입자가 근저당을 걸게 하는 방식이 통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또 이게 말썽의 소지가 높다고 귀띔했다. "새 아파트에 근저당이 상식 이상으로 무리하게 설정된다면 그게 바로 뭘 말하는 거겠습니까?"
정부가 강하게 규제를 한다고 해도, 처음부터 정상적인 거래가 어려운 상황이 돼 있다는 게 주민과 부동산 전문가들의 불만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렇게 비정상적인 방법으로라도 은평 뉴타운 지역에 투자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지축, 연신내, 불광, 갈현동 등 인근 일대의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는 그야말로 십인십색이었다.

은평 뉴타운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이들은 뭐니해도 '북한산의 정원'이라 일컬어지는 천혜의 자연 환경에 후한 점수를 줬다. "일주일에 한 번 가는 문화생활 장소야 좀 멀어도 되지만, 매일 마시는 공기야 신선한 것이 좋잖습니까. 서울 지역에 이런 곳이 또 어디 있습니까." (T부동산 중개업소)
이런 이유를 들어 '판교' 이상 갈 거다, 상암 정도는 되지 않겠냐는 등의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비관적인 의견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전매제한을 피해가는 1지구가 실질적 거주지로서의 매력은 가장 떨어지는 편이라는 게 그 이유다. 그래서 전매제한을 풀어줬다는 말까지 나돈다.

A부동산 대표는 은평 뉴타운은 실패작이라고 단언한다. 박석고개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만난 E부동산의 나이지긋한 대표 역시 비슷한 평가를 내렸다.
"요즘 부동산이 잠자고 있잖아. 그래서 띄우려고 하는 거 같은데, 솔직히 걱정돼. 나 이 지역에서만 부동산을 35년 했거든. 사실 우리도 2지구 109㎡(33평) 나오는데 갈까말까 해. 투자가 아니라 입주 목적인데도 별로 생각이 없어."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목적으로 한다는 신도시 정책. 그러나 목적 따로 결과 따로인듯 현지에서는 '누구를 위한 잔치인가'라는 볼멘 소리가 벌써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