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오일달러 시대 열렸다

김경환 기자, 김유림 기자 2007.09.2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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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금융시장 주무르는 큰 손으로 등장

고유가를 바탕으로 한 막대한 '오일달러'가 국제 금융시장을 좌우하는 큰 손으로 떠올랐다.

최근 중동국가들은 석유를 팔아 챙긴 막대한 자금인 이른바 '오일달러'를 바탕으로 전세계 기업, 부동산, 금융상품 등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사들일 수 있는 것은 모두 사들인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다.

중동은 제1~2차 석유위기 때 벌어들인 오일달러를 사치품을 사는데 소비했지만 최근 고유가로 벌어들은 오일달러는 사회간접자본시설 또는 해외 기업인수에 투자하고 있다. 특히 금융 관련 기업 사냥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새로운 오일달러 시대가 열렸다고 할 수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에 따른 신용경색 현상이 미국과 유럽 등 선진권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상황에서 중동국가들의 투자 확대는 상대적으로 더욱 돋보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아랍에미레이트(UAE), 이집트, 시리아 등 중동 국가들이 산업다각화와 외국인 투자유치, 과감한 해외투자 등을 통해 글로벌 투자붐을 조성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중동 국가들이 최근 5년간 석유를 팔아 챙긴 돈은 1조5000억달러에 달한다.

중동국가들은 이러한 막대한 오일달러를 바탕으로 대규모 국부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아랍에미레이트연합(UAE)의 국부펀드는 8750억달러에 달하며, 사우디아라비아도 3000억달러를 운용하고 있다. 쿠웨이트의 국부펀드도 2500억달러나 된다.

이들 중동국가의 국부펀드는 자금동원력을 바탕으로 부동산, 기업 인수·합병(M&A), 주식, 채권 등 다양한 글로벌 자산 투자에 나서면서 전세계 경제를 주무르는 큰 손으로 부상했다.


특히 20일에는 UAE 두바이와 카타르가 서방 선진국 주요 증시의 지분을 잇따라 매입했다.

이를 두고 아랍권이 세계자본시장을 장악하려는 시도라는 경계심이 포함된 분석도 나왔다. 최근 중동국가들이 국부펀드를 동원해 미국, 유럽 등 선진 경제권의 주요 기업과 기간 산업에 대한 무차별적 M&A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두바이증권거래소는 이날 미국 나스닥증권거래소 지분 20%를 주당 41.04달러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이는 나스닥 전일 종가에 14%의 프리미엄이 붙은 금액이다.

두바이증권거래소는 나스닥이 보유한 런던증권거래소 지분 28%도 주당 14.14파운드에 매입키로 했다. 대신 나스닥은 두바이증권거래소가 보유한 스웨덴 OMX 거래소 지분을 넘겨받는다.

이로써 두바이증권거래소를 소유하고 있는 두바이정부는 나스닥의 1대 주주로 등극하는 한편 미국 증권거래소의 지분을 보유한 최초의 중동 국가가 됐다.



두바이와 중동지역 금융허브를 놓고 경쟁하고 있는 카타르도 같은날 런던증권거래소 지분 20%를 인수했다. 이로써 런던증권거래소는 지분의 절반이 두바이와 카타르 등 중동 국가로 넘어가게 됐다. 카타르는 OMX거래소 지분 10%도 보유하고 있다.

중동 국가의 거침없는 투자 행보는 사모펀드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UAE의 최대 토후국인 아부다비의 투자회사 무바달라가 이날 세계 최대 사모펀드 중 하나인 미국 칼라일 그룹의 지분 7.5%를 13억5000만달러에 인수키로 합의했다.

앞서 중국도 미국의 유명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에 30억 달러를 투자해 아시아의 국부펀드가 신용경색으로 자금줄이 막힌 미국 사모펀드의 돈줄 역할을 하고 있다.



중동 국가들의 미국 금융 자산 매입을 놓고 미국은 국가 안보에 위해가 될 소지가 있는지 검토하겠다고 밝히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번 계약이 국가 안보에 미칠 영향이 있을지 살펴볼 것"이라며 "진행 과정에 불편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우려 여론이 커지자 두바이증권거래소의 나스닥 인수 계약이 자칫 국영기업 두바이포트월드(DPW) 사태를 닮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DPW는 지난해 뉴욕 등 미국 주요 6개 항구의 운영권을 인수했다. 그러나 미국은 외국인 투자 검토위원회를 열어 이를 중단시켰고, DPW는 결국 AIG그룹에 이를 재매각할 수 밖에 없었다.

최근에는 유럽연합(EU)도 중동국가들의 국부펀드의 무차별 인수에 대해 우려의 시각을 표명했다.



여기에는 '약달러'로 대변되는 미국의 전세계 경제에 대한 영향력 약화와 '국부펀드'로 활성화되고 있는 중동지역과 중국의 지위 격상이라는 새로운 함수관계가 반영되고 있다.

미국은 3년간 지속된 달러 약세로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를 잃을 수도 있는 입장이다. 미국은 지금 달러화 자산 이탈이라는 만약의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아시아 지역의 국부펀드를 끌어들여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처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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