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유류세 해법은 정유사 누르기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07.06.15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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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세 인하' 여론에 시달리고 있는 정부의 눈길이 정유사를 향하고 있다.

'유류세'로만 모아졌던 불만을 '정유사 마진'으로 분산시키는게 정부의 1차 목표였다면, 여기까진 성공했다. 지난 11일 발표한 자료가 주효했다. "올 들어 5월까지 휘발유값 상승분의 69%가 정유사 이윤"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유류세 인하' 여론은 수드러들지 않고 있다. 정부의 휘발유 원가 계산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래서 정부가 꺼내든게 '유통구조 점검'이다. 정유사와 주유소 얘기다. 이 중에서도 핵심은 정유사다. 전국에 퍼져있는 주유소들에까지 정부가 손길을 뻗기는 쉽지 않은 노릇. '유류세 인하는 절대불가'라는 정부가 나름대로 찾은 해법이다.

조원동 재정경제부 차관보는 15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정유 유통 과정에서 경쟁을 저해하는 요소가 없는지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정유사에서 주유소로, 주유소에서 소비자로 넘어가는 모든 단계가 점검 대상"이라면서도 "현실적으로 주유소 단위에서 발생하는 문제까지 다루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정유사가 타깃이 될 수 밖에 없는 셈이다.

정유업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은 이미 시작됐다. 진동수 재경부 제2차관은 지난 14일 정례브리핑에서 하반기 휘발유·경유 관세인하 조치를 설명하면서 "국내 정유업계의 '담합'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경쟁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도 아닌 재경부가 특정업계에 대해 공식적으로 '담합'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한 것은 이례적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정유 유통 과정의 경쟁저해 문제에 대해 공정위와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풀어쓰면 "정유업계에 담합이나 독과점 문제가 있는 살펴보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주유소의 이른바 '백마진'(Back margin)도 정부가 눈여겨 보는 포인트다. '백마진'이란 정유사가 주유소에 휘발유를 넘길 때 공식가격보다 ℓ당 60원 정도씩 깎아주는 것을 말한다.



이재훈 산업자원부 제2차관은 지난 14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국내 석유제품 가격을 모니터링해 공장도 가격이 아닌 실제 정유사와 대리점 사이의 실거래가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거래가가 확인되면 '백마진' 만큼 공식적인 공장도 가격를 내리고, 그만큼 소비자가격 인하를 유도할 수도 있다는게 정부의 판단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국내 최대 정유사인 SK㈜는 14일 휘발유의 공장도 가격(세후 기준)을 ℓ당 1497원에서 1478원으로 19원 내렸다. 지난 1월 이후 5개월 만에 최대 인하폭이다.

SK㈜ 관계자는 "싱가포르 현물시장의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 5월 중순 이후 내림세를 보여 이를 반영한 것일 뿐"이라고 했지만, 정부의 '구두압박'과 무관치는 않다는 분석이다.



한편 정부의 '정유사 누르기'가 이 같은 심리적 압박에 그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과거처럼 정부가 휘발유 값을 통제하는 시대도 아니여서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가 마땅치 않은 때문이다. 재경부가 그토록 꺼려하는 '반(反) 시장적 조치'를 동원하지 않는 한 말이다.

'유류세 인하' 여론에 힘겨워 하는 정부 역시 '정유사 누르기'에 있어서는 결국 여론에 기대야 하는 처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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