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병칼럼] 팬택을 살린다는 것

머니투데이 강호병 금융부장 2006.12.19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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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 사교육이라면 나도 예외는 아니다. 초등학생 2명이니'시작'일 뿐인데도 이런 난리가 없다. 영어·수학·논술…. 좋다는 프로그램이나 학원 찾아다니며 고르고 저글링하듯 아내와 시간표 짜느라면 머리가 아프다. 특히 영어란 것은 청취량이 뒷받침 안되면 안되니 프로그램 1개로는 영 부족하다. 다 그게 돈이다.

집에서는 또 면학분위기 조성을 위해 같이 공부(?)하는 식으로 최대한 협조해야 한다. 중학생이 되면 동네에 있는 프로그램으로 커버가 안된다니 교육여건 좋은 곳으로 비싼 집값 부담하며 맹부모삼천지교를 해야 할 판이다. 우리 가정보다 훨씬 더 극성인 부모도 여럿 봤다. 최소한 대학문턱을 넘어갈 때까지 사교육 전쟁은 우리 가정의 라이프스타일을 붙들어 맬 것이다.



 사교육 자체는 사람에 대한 투자이니 돈 아깝다는 생각은 안든다. 씁쓸한 것은 가계경제를 쥐어짜다시피 해서 너도 나도 사교육에 미친 듯이 매달리는 것이 저성장시대의 표상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저성장시대란 부가가치를 만드는 기업이 몇개로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세계적으로 내놓을 만한 큰 기업이 수많은 협력업체를 거느리고 생태계를 만들어 국민들을 먹여살리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 입장에서 보면 입사할 만한 회사가 거의 고정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IT처럼 그나마 역동적인 곳을 빼면 맨손으로 일가를 일군 기업가가 나오는 것도 가뭄에 콩 나기다. 대학생과 청소년에게 그렇게 만들어진 생태계에 들어가는 것이 복이요 꿈이 된 지 오래됐다. 부모 또한 자녀를 그러한 생태계에 들어갈 만한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이 시간에도 허리띠 졸라매며 돈을 쏟아붓고 있다.



 이런 저성장기에 웬만한 기업 하나 대수롭지 않게 망하게 내버려두는 것은 특히 경계할 일이다. 고졸 출신이라도, 명문대 졸업장이 있다는 것만으로 취직이 쉬웠던 역동적인 예전에는 기업 하나가 흥하고 망하는 것이야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다이내미즘이 없어진 지금 기업 하나가 파손되면 그 대체가 쉽지 않다. 하기 쉬운 말로 부실기업은 조기에 퇴출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 시대 기업을 일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면 함부로 할 소리는 아니다.

 팬택계열은 비재벌 출신으로 살기등등한 IT업계 풍랑 속에서 IT업계의 거인으로 성장하기를 시도한 기업이다. 국내에서 규모를 키우고 해외에서 독자브랜드로 나아가려는 도약의 와중에서 엎어져 버렸지만 팬택계열의 실험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팬택계열의 공격경영에 대해 찬사와 비아냥이 뒤섞여 들리지만 맨땅에서 3조원의 매출까지 끌어올린 그 에너지를 그냥 썩혀버리기는 아깝다.

 은행들이 뒤늦게나마 비올 때 우산 뺏지 않는다는 산업후원자 역할을 인식하고 워크아웃(채권단 공동관리)에 나선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은행의 믿음이 굳건하다면 2금융권이 못따라올 것도 없어 보인다. 성공하면 법 없이 워크아웃에 성공한 선례가 된다.


 꼭 규제를 푼다, 중소기업 지원책을 만든다고 법석을 떨어야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인의 피와 땀을 알아주고 그들을 존중해주며 필요할 때 옆에 있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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