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에게 보다 더 '중요한 것'

김소희 말콤브릿지 대표 2006.09.13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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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으로 본 세상]불확실한 상황서 의사결정 가능해야

얼마 전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의 책을 읽다가 비수처럼 꽂히는 문장을 발견했다.

그의 저서 '혁신과 기업가 정신(Innovation and Entrepreneurship)'에서 피터 드러커는 어떤 사람이 기업가가 될 자질이 있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확실한 것만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기업활동 뿐 아니라) 다른 여러 많은 활동들도 제대로 처리할 것 같지가 않다. 예컨대 정치, 군대의 고위 장교, 또는 정기선의 선장과 같은 역할은 도무지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종류의 업무들은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요컨대 어떤식이든 의사결정의 진수는 불확실성이니까 말이다."



'의사결정의 진수는 불확실성에 있다'는 말은 매우 날카로운 지적이다. 우리는 확실한 것을 결정하고자 하지만, 실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지 않기에 의사결정이 그만큼 중요해진다. 나는 이 말의 의미를 나는 어느 전쟁 다큐멘터리에서 매우 인상깊게 느꼈던 바 있다.

전쟁을 떠올려보자. 군대의 장교는 총알이 빗발치는 전시에선 매 순간 '명령'이라는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는 부하들의 목숨이라는 무게를 짊어지고 있으며, 그들을 담보로 승리를 쟁취해야 하는 사명을 띄고 있다.



그의 명령은 부하들의 희생을 야기시키지만, 전황을 유리하게 이끄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희생없이 승리를 쟁취하는 순간도 있겠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혹독한 희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참한 참패에 직면하기도 한다. 누구도 미래를 알 수 없기에 그의 의사결정은 그야말로 첨예하다.

대부분의 전쟁영화에서는 장교들의 명령은 언제나 단호하게 그려진다. 갑작스레 적군의 공격이 시작되었을 때, 장교들은 '누구 앞으로', '누구는 엄호할 것'을 매우 즉각적으로 지시한다. 또 군인들은 놀랍게도, 앞으로 나가라는 명령을 받으면 버젓이 총알이 날라오고 있음에도 그 속으로 돌진한다.

그 순간, 그 장교가 내린 결정들이 과연 옳은 것이었느냐고 우리가 반문할 수 있을까. 사실 그같은 순간에서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김아무개' 대신 '이아무개'를 내보내는 것이 더 나았을지, 아니면 일단은 후퇴하는 것이 더 나았을지는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생각해보면 이같은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지금 앞으로 내보내려는 부하는 나의 결정 여하에 따라 죽을 수도 있다. 이 인간적인 갈등이 과연 장교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내가 보았던 전쟁 다큐멘터리에서는 영화와는 다른 실상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2차대전 당시, 사실 갑작스런 적의 공격앞에서 적지않은 장교들이 그만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패닉(Panic)에 빠져버렸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그들은 갑작스런 전황에서 아무런 의사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날아오는 총탄속으로 부하를 내보낼 수도, 그렇다고 후퇴를 할 수도 없었고, 솔직히 말하자면 어떤 대책을 마련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피터 드러커는 이같은 점을 꿰뚫어 보았다. 확실한 것만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군대의 장교와 같은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다. 의사결정의 진수는, '결코 피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과감함'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어떤 조직에서 리더가 된다는 것은 무엇보다 그같은 과감함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 피터 드러커는 우리에게 이같은 용기만 있다면 기업가적 활동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교육으로 습득할 수 있다고 썼다.

컨설팅을 하다보면, 언제나 1등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뿌리깊이 2등이 되는 길을 걷고 있는 기업들이 있어 안타깝다. 이들은 스스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보다는 다른 기업들이 움직이는 방향을 뒤쫓는다.

다른 기업이 런칭하는 것을 런칭하고, 다른 사람이 창업하는 것을 창업한다. 이것은 일종의 '대세'에 동참하겠다는 것인데, 과감하지 못한 사람들은 왠지 이렇게 해야 보다 확실한 것 같아 안심이 된다.

그러나 안심이 되는 행동과 전술적 행동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경험이 없는 신참내기 군인들은 적의 총탄을 피해 도망칠 때, 다른 사람이 뛰는 방향으로 따라간다. 이들은 무섭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움직임으로써 안심을 얻고자 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 서로를 위험하게 만들 뿐이다. 그는 전술적으로 다른 사람이 뛰지 않는 방향으로 뛰었어야 한다. 이 방식은 안심이 되는 행동은 아니겠지만 전술적으로 옳기에 살 수 있는 확률이 높다.

리더에게 중요한 것은 '확실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리더답게 행동하는 것'이다. 히딩크가 '5:0감독'이라는 오명을 얻고 있을 때의 일이다. 누가 봐도질 것이 뻔한 게임에 임하면서 그는 '오늘 분명히 이길 것이다'라고 인터뷰했다. 물론 결과는 패배였다.

히딩크라고 허언을 하고 싶었겠는가. 그러나 마지못해 응해야 할 인터뷰가 있었다면 그에게 전술적인 최선의 답은 '오늘 반드시 이긴다'가 될 수 밖에 없다. 확실한 이야기만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그가 '오늘 아무래도 질 것 같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면 이것은 코미디가 되었을 것이다.

확실한 것만 믿으려는 사람들이 조직의 리더가 되었을 때, 오히려 부하직원들은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자신이 이미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인데도 이 프로젝트가 과연 타당한 것인지 끝없이 의심하거나, 이 방향이 맞느냐고 직원들에게 물어본다.

마차가 가는 길은 말이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부가 알고 있어야 한다. 피터 드러커는 '확실한 것만 선호하는 사람들은 훌륭한 기업가가 될 확률이 낮다'고 못박았다. 그는 리더로서 갖추어야 할 것은 '행동양식'이라 지적했다.

'무엇이 확실한 것인지를 아는 것'이 리더가 아니라,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를 아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이다. 그런 행동이 과연 좋은 결과를 가져오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하나 뿐이다. 우리는 누구도 그것을 알 수 없지만, 충실한 의사결정과 과감한 수행만이 성공의 확률을 높여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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