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참 고생많았다. 이제부턴…"

한근태 한스경영컨설팅 대표 2006.08.30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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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경영]멋지게 늙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지혜

집 사람이 성당에 갔다 와서 한 이야기다. 신부님이 아줌마들을 모아놓고 가장 되고 싶은 나이가 몇이냐는 질문을 했단다.

당연히 20대나 30대가 많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뜻밖에 50대가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젊은 시절은 너무 고달파서 싫다는 것이다. 돈도 없고, 결혼도 안 했고, 미래도 불확실하고…. 그리고 60이 넘으면 몸도 여기저기 아프고, 외롭고, 죽을 날도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데 50대는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었고, 애들도 어느 정도 키워 자녀로부터도 자유롭고, 몸도 그런대로 쓸만하다. 그래서 50대를 아줌마들이 가장 선호하더란다.

그 얘기를 듣고 나 역시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절대 20대나 3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지겨운 입시 공부도 하기 싫고, 군대를 다시 가야 하는 것도 재미없다. 박사학위도 새로 따야 하고, 그것으로 충분치 않아 경영학석사(MBA)도 해야 한다.



직장이야 어떻게 얻는다 쳐도 그곳에 뼈를 묻어야 할지, 아니면 또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애를 낳고 그 애를 키우기 위해 밤잠도 설쳐야 한다. 정말 모르니까 살았지 다시 똑같이 살라고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늘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왔지만 나는 50대인 지금이 가장 좋다.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대학에 들어가고 어느 정도 앞가림을 하기 때문이다. 집사람과도 잘 지낸다. 내 앞길에 대해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나쁜 점도 많다. 눈이 침침해지는 것이 가장 결정적이다. 책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이것은 결정적이다. 머리가 빠지는 것도 싫다. 그 많던 숱은 어디 갔는지. 친구들이 늙는 것을 보는 것도 싫다.

친구들 얼굴을 통해 내가 늙는 것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아무 옷이나 입을 수 없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젊어서는 어떤 옷을 입어도 잘 어울렸는데 요즘에는 아주 신경 써서 옷을 입지 않으면 뭔가 모자란 사람 같다.
 
요즘 내 화두 중의 하나는 `어떻게 늙을 것인가? 노후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라는 것이다. 50대인 지금이 가장 좋지만 나이는 들것이고 그 때 역시 우리 삶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나이 들어 좋은 점에 대해 생각을 해 보기로 했다.
 
첫째, 생계를 위해 애써 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나이 들어 돈 문제 때문에 징징대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고 그러기를 고대한다. 대신 나 자신을 위로하고 싶다. "그동안 참 고생 많았다. 정말 열심히 살고 처자식 건사하면서 잘 살았다. 지금부터는 너 자신을 위해 살아라. 쉬엄쉬엄 그 동안 못 가본 봄꽃놀이, 단풍놀이도 다녀라"고 얘기하고 싶다.
 
둘째, 더 이상 삶에 연연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늙으면 누가 나 보고 생명보험을 들라고 하겠는가. 젊어서는 안전을 위한 여러 장치가 필요하다. 아직 어린 자식들이 있는데 뭐가 잘못되면 큰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늙으면 그런 것으로부터 훨씬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언제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셋째, 조찬 모임 때문에 억지로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 동안 가장 부족했던 것이 아침 잠이다. 하지만 노후에는 조찬 같은 것은 다 끊고 싶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날 것이다.
 
넷째,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 젊어서는 앞으로 할 일이 많고, 경력관리도 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 눈치를 봐야 한다. 하지만 늙으면 내일 벌어질 일에 대해 덜 신경을 쓰게 될 것이다.

나 같이 글을 쓰고 강연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설혹 사람들 맘에 들지 않는 얘기를 한다고 해도 누가 감히 나이든 늙다리 노인을 협박하겠는가. 하고 싶은 말을 눈치 보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섯째, 사람과 일에 대한 직관력이 생기는 것이다. 웬만해서는 흔들리지도 않는다. 부화뇌동하지도 않고,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쓰지도 않는다. 포기할 일은 과감하게 포기한다. 애를 써도 안 되는 일은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 될 일은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하지만 멋지게 늙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혜이다. 지혜로운 사람에게 늙음은 바로 봄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늙음은 바로 겨울이다. 그래서 나는 지혜로운 노인이 되고 싶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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