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20대나 30대가 많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뜻밖에 50대가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젊은 시절은 너무 고달파서 싫다는 것이다. 돈도 없고, 결혼도 안 했고, 미래도 불확실하고…. 그리고 60이 넘으면 몸도 여기저기 아프고, 외롭고, 죽을 날도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들고….
그 얘기를 듣고 나 역시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절대 20대나 3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지겨운 입시 공부도 하기 싫고, 군대를 다시 가야 하는 것도 재미없다. 박사학위도 새로 따야 하고, 그것으로 충분치 않아 경영학석사(MBA)도 해야 한다.
늘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왔지만 나는 50대인 지금이 가장 좋다.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대학에 들어가고 어느 정도 앞가림을 하기 때문이다. 집사람과도 잘 지낸다. 내 앞길에 대해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나쁜 점도 많다. 눈이 침침해지는 것이 가장 결정적이다. 책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이것은 결정적이다. 머리가 빠지는 것도 싫다. 그 많던 숱은 어디 갔는지. 친구들이 늙는 것을 보는 것도 싫다.
친구들 얼굴을 통해 내가 늙는 것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아무 옷이나 입을 수 없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젊어서는 어떤 옷을 입어도 잘 어울렸는데 요즘에는 아주 신경 써서 옷을 입지 않으면 뭔가 모자란 사람 같다.
요즘 내 화두 중의 하나는 `어떻게 늙을 것인가? 노후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라는 것이다. 50대인 지금이 가장 좋지만 나이는 들것이고 그 때 역시 우리 삶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나이 들어 좋은 점에 대해 생각을 해 보기로 했다.
첫째, 생계를 위해 애써 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나이 들어 돈 문제 때문에 징징대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고 그러기를 고대한다. 대신 나 자신을 위로하고 싶다. "그동안 참 고생 많았다. 정말 열심히 살고 처자식 건사하면서 잘 살았다. 지금부터는 너 자신을 위해 살아라. 쉬엄쉬엄 그 동안 못 가본 봄꽃놀이, 단풍놀이도 다녀라"고 얘기하고 싶다.
둘째, 더 이상 삶에 연연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늙으면 누가 나 보고 생명보험을 들라고 하겠는가. 젊어서는 안전을 위한 여러 장치가 필요하다. 아직 어린 자식들이 있는데 뭐가 잘못되면 큰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늙으면 그런 것으로부터 훨씬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언제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셋째, 조찬 모임 때문에 억지로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 동안 가장 부족했던 것이 아침 잠이다. 하지만 노후에는 조찬 같은 것은 다 끊고 싶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날 것이다.
넷째,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 젊어서는 앞으로 할 일이 많고, 경력관리도 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 눈치를 봐야 한다. 하지만 늙으면 내일 벌어질 일에 대해 덜 신경을 쓰게 될 것이다.
나 같이 글을 쓰고 강연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설혹 사람들 맘에 들지 않는 얘기를 한다고 해도 누가 감히 나이든 늙다리 노인을 협박하겠는가. 하고 싶은 말을 눈치 보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섯째, 사람과 일에 대한 직관력이 생기는 것이다. 웬만해서는 흔들리지도 않는다. 부화뇌동하지도 않고,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쓰지도 않는다. 포기할 일은 과감하게 포기한다. 애를 써도 안 되는 일은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 될 일은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하지만 멋지게 늙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혜이다. 지혜로운 사람에게 늙음은 바로 봄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늙음은 바로 겨울이다. 그래서 나는 지혜로운 노인이 되고 싶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