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올림픽보다 못한 것들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 2006.06.13 09:21
글자크기
【김준형의 돈으로 본 세상】10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월드컵 개막식. 알리안츠아레나를 가득메운 관객들은 유명인사들이 소개될때마다 박수를 보냈다. 단 한사람에게는 관객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독일 월드컵 방송권료 수입만 15억 스위스프랑(1조3170억원)에, 천문학적인 스폰서비를 쓸어담고 있는 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 FIFA) 회장이다. 관객들의 야유속에는 세계인의 축제를 조직해낸 공로보다는 끝없는 탐욕에 대한 염증이 담겨 있었다.



관객뿐 아니라 기자들 역시 마음속으로 'F' '쌍시옷' 섞인 글로벌 야유를 보탰을 것이다. FIFA는 신문·통신사는 월드컵 매 경기당 전후반 5장씩만 사진을 송고할 수 있다는 사상초유의 보도지침을 전세계 언론사에 '하달'했다. 길거리나 술집에서 TV를 보며 응원하는것도, '2006 월드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공인구 '팀 가이스트'를 그리는 것도 돈을 내고 허락을 맡도록 하는 FIFA는 이미 세계인의 '빅 브러더' 반열에 올라섰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얼마전 '월드컵이 올림픽보다 나은점'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미국의 독무대가 아니고 정치색이 엷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과연 그럴까. 25억원 연봉에, 유엔보다 많은 207개 회원국을 거느리고, 부시 미국 대통령이 묵었던 하루 1830만원짜리 호텔에서 머물며, 각국 국가원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블라터의 FIFA는 적어도 월드컵기간에는 미국보다 훨씬 더한 '글로벌 슈퍼파워'이다. 게다가 올림픽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올림픽보다 더 필사적인 국가대항전이 된 월드컵이 정치색이 엷다는 말은 축구 종주국에서나 할 수 있는 말이다.
백번 양보해, 훌리건의 난동, 살인, 전쟁까지 일으켰던 월드컵의 정치색이 엷다고 치자. 정치색보다 더 교묘하고 집요한 '돈색깔'은 악취가 더했으면 더하지 덜할게 없다.



월드컵을 올림픽보다 짜증나게 만드는 돈냄새의 공범은 FIFA말고도 많다. '거리 응원권'을 돈받고 팔아넘긴다는 발상은 블라터보다 한수 위다. 그 '쯩'을 따냈다는 기업을 비롯해 온갖 핑계로 한다리를 걸친 기업들은 경기가 있건 없건 툭하면 초고성능 앰프를 들고 나와 응원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를 유행가들을 부르고 틀어댄다. '응원'이라는 이름의 길거리 쇼가 일으키는 굉음은 폭력에 가깝다. 2002년 그날의 길거리에서 역동성과 넘치는 정열로 세상을 바꿔놓았던 젊음의 힘은 자본의 기득권에 주도권을 빼앗긴지 오래다. 길거리에 서는 것만으로도 기업들의 소품이 돼버리는 찜찜함이 월드컵의 재미를 앗아간다.
똑같은 화면을 고만고만한 아나운서와 해설자들의 입담으로 치장하고 앞뒤 광고로 도배하는 방송3채널 앞에 소비자들은 최소한의 선택권도 박탈당한다. 덕분에 스탠리 큐브릭의 '스파르타쿠스'를 EBS에서 다시 볼수 있었던걸 위안삼아야 할 판이다.

토고 내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선수들의 돈집착도 빼놓을수 없다. 토고는 탈 식민지 이후부터 무려 38년이나 정권을 잡았던 독재자가 심장마비로 자연사한뒤, 그 아들이 선거를 통해 또 대통령이 된 전형적인 정치적 경제적 후진국이다.
선수들이 1인당 연간 국민소득 382달러의 소국으로서는 천문학적인 수당을 요구하고 나선건 '지구촌 최대의 돈잔치'에 눈이 뒤집힌데서 온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프로의 최대 무기는 '경쟁력과 실적'이며, 몸값을 높이는 건 팬들의 평가라는 '시장마인드'를 기대하는건 무리일 것이다.

월드컵의 정수는 강자와의 양보없는 한판 승부이다. 마음이 딴데 가 있는 상대를 몰아붙이는건 재미도 없고 마음도 편치 않다. FIFA나 기업들의 상혼이야 어쩔수 없다치고, 팬들이 즐거움을 찾을 곳은 참가국 선수들의 투혼밖에 없을 듯하다.
'대한민국 히~ㅁ, 토고 화이팅! '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