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매도 착한(?) 제시카 알바, 너무 좋아요"

김소희 말콤브릿지 대표 2006.05.23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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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으로 본 세상]'착하다' 트렌드로 엿본 세상

"몸매도 착한(?) 제시카 알바, 너무 좋아요"


"몸매도 착한 제시카 알바, 너무 좋아요"

"그 레스토랑 음식 맛도 좋지만 가격도 참 착해요"

최근들어 젊은 세대 사이에 유행처럼 퍼지고 있는 '착하다'는 말의 쓰임새들이다.



위의 말을 풀이해보자면, '몸매도 잘 빠진 제시카 알바', 그리고 '그 레스토랑 음식맛도 좋지만 가격도 참 저렴해요'가 된다. 왜 그들은 이같은 표현에 '착하다'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일까.

때때로 유행이란 너무도 천재적이다. 기발하며, 영민하고, 누군가 두문불출하여 연구해낸 블랙코미디처럼 완벽하게 세상을 한 방 먹이고 도망간다.



솔직이 나는 이 현상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이 흥미롭고 재미있는 현상은 우리 시대의 숨길 수 없는 단면들을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가장 먼저 생각해 볼 것은 도대체 '착함'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현재 착하다라는 말이 쓰이는 경우들은 대부분 '나의 주관적 욕구에 충실히 부합'하는 경우들이다.

내가 잘 빠진 여자를 좋아한다면, 잘 빠진 여자들이 착한 것이요, 내가 비싸지 않고 맛있는 식당을 원한다면 저렴한 가격이 착한 것이 된다. 세상에, 이같이 솔직한 트렌드라니!


이 현상이 웃음을 유발하는 데에는 2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관점에서 세상을 재단하려는 것에 대한 황당함이고, 둘째는 '착하다'라는 개념의 가치를 뚝 떨어뜨린 점에 대한 호응이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여기에는 '착함'에 대한 비웃음이 교묘하게 담겨져 있다.착한 사람에 대해, '내가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 내지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하는 사람'이란 무시감이 은근슬쩍 배어 있는 것이다.

일찌기 많은 학자들은 어디서 웃음이 유발되는가를 나름대로 정의해왔다. 쇼펜하우어는 웃음이란 '어떤 관념과 관념이 불균형일 때' 나타난다고 했고, A. 베인은 '타인의 권위와 체면이 상실되었을 때에 느끼는 쾌감'이라 표현했다.

어쨌거나 이 현상은 유머러스하게 받아들여지며, 유쾌하게 확산되고 있다. 사실 불쾌한 패러디는 유행이 될 수 없다. 사람들이 이 유행에 호응하는 이유는 지금과 같은 영악한 시대에서 착함의 가치가 지나치게 과대평가되고 있음을 종종 느끼기 때문이다.

얼마전 모 취업 사이트에서 실시한 직장인들의 설문조사에서 '가장 일하기 싫은 상사' 1위로 '무능하고 착한 상사'가 꼽혔다. 요즘의 유행으로 보자면, 상사는 능력이 있어야 착한 것이요, 마땅히 통솔력과 카리스마가 있어야 착한 것이 된다.

어디 그뿐인가. 요즘의 유행으로 보자면, 말이란 잘 달려야 착한 것이고, 운동선수는 경기를 잘해야 착한 것이다. 기업은 돈을 잘 벌어야 착한 것이고, 장군은 전술에 능해야 착한 것이다. 마치 음식 값이란 저렴해야 착한 것이 마땅한 것처럼 말이다.

착하긴 한데 달리지 못하는 말이 있다면 착한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여기엔 착한 운동선수인데 경기를 못하거나 착한 장군인데 전쟁에서 자꾸 진다면, 과연 착하다는 것만으로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겠느냐는 예리한 질문이 숨겨져 있다.

그러나 착함에 대해 드러내놓고 논의하기엔 아직 세상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 착함이란 함부로 무시하기엔 아직도 너무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때때로 답답함에 사람을 질식시킨다 할지라도, 범람하고 있는 무례함과 이기주의에 대항하는, 여전히 가치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트렌드엔 옳고 그른 것이 없다. 단지 가릴 수 없는 거울처럼 세상의 단면을 여과없이 비출 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앞으로 '착함'에 대한 가치는 점점 재평가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이 옳던 그르던 상관없이 그렇게 될 것은 자명하다.

그러면 미래에는 나쁜 사람들이 대접받게 될까? 설마 그럴리는 없다. 단지 착한 사람에 대한 정의가 달라질 뿐이다. 현재의 유행으로 볼 때, 확답할 수 있는 미래 사회의 착함 중 하나는 자신의 사명을 이해하고 완수하는 것이다.

'아 나는 말이었지, 그렇다면 열심히 달려야지' 하는 마음이 '저는 너무 당황해서 제가 말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요'라든가 '저는 마구 달리기 보다는 조금 더 온순하게 걷고 싶어요' 라는 마음보다 몇백배 고운 마음씨로 인정받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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