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병칼럼]부동산값과 한은 '정체성'

머니투데이 강호병 금융부장 2006.05.16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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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처럼 거시경제정책이 힘이 없는 때도 없다. 저성장·저물가·저금리 등 신3저가 고착화된 상황에서 금리-재정수단을 살짝 움직여본들 체감적인 경제변화를 이끌어내기 힘들다. 통화와 재정수단을 휘둘러 경제성장률, 물가가 소망스러운 구역으로 들어가도록 조작한다는 전통적 케인시언적 틀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는 표현이 더 옳다. 그런데도 새로운 환경에 맞는 정책지평을 적극적으로 찾는 일은 부진하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대기업들이 친디아 등 세계의 신성장 지역에 대단위 투자를 하고 있는 마당에 국내 금리를 움직인다고 해서 국내에 투자물꼬가 터질 일도 없다. 고유가와 저물가가 공존하는 아이러니는 또 어떻게 볼 것인가. WTI 기준 유가가 배럴당 70달러를 넘어갔지만 오일쇼크 위기감은 찾기 힘들다.



친디아 브릭스 등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인이 쓰고 남을 정도로 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반도체, 금융, 인터넷 등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산업이 경제의 주류가 된 탓도 있다. 정보통신혁명 또한 경제의 생산성을 부쩍 올려놓으며 디플레이션 압력을 만들고 있다.

 이는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정의돼온 중앙은행의 정체성에 대한 심한 도전이다. 한국은행법 1조에도 한국은행의 최우선 목표는 물가안정으로 돼 있다. 물가안정 목표를 버릴 수야 없겠지만 그것만 쳐다보고 외골수로 움직이는 것도 곤란하다.



 한국은행의 고민이 집중돼야할 부분은 자산효과(wealth effect)다. 주가나 부동산값이 오를 때 부자가 됐다고 생각해서 소비를 더 하는 심리효과다. 적당할 때는 경기를 지탱하는 약이 되지만 심할 때는 사회·경제적 위기를 부르는 독이다. 지금까지 각국 중앙은행은 자산거품의 부작용을 알면서도 정작 통화정책의 틀에 넣어놓고 직접 다루지 않고 있다. 자산시장의 과열이 소비과열로 이어져 물가가 들썩거릴 때나 통화정책을 움직여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그 틈을 타 과잉유동성과 자산거품이 일상화됐다.

 한은도 시대 변화에 맞춰 자산가격을 통화정책의 틀로 끌어들일 때가 됐다고 본다. 자산가격이나 그와 연관된 금융변수에 심한 불균형이 생길 때 비록 실제 물가가 물가안정 목표에 미달하더라도 기꺼이 금리를 올릴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금리를 크게 올리지 않고서라도 은행 지급준비금이나 신용량을 조절하는 방법이 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자산가격은 거칠게 다루면 갑자기 폭락해 경제가 위축되고 부실채권이 양산될 수 있으므로 정교하고 신중한 운용틀과 엔지니어링이 필요하다.

 한은도 부동산 등 자산가격에 대한 문제의식은 갖고 있지만 자산가격을 감안한 새로운 통화정책 틀을 만들고 공청회를 열어 검증하는 적극적 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얼마전 발표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보고서에서 정부 행정효율성 순위가 31위에서 47위로 곤두박칠쳤다.


그간 참여정부가 소리높여 외쳐온 정부 혁신이 무색할 정도다. 정부 혁신은 민원성 서비스 개선이나 조직개편이 아니라 얼마나 신뢰받는 정책을 만들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한은의 역할 정립도 그러한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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