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사회공헌'보다 '삼성 미래'

성화용 기자 2006.02.07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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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이 가야할 길

5개월의 해외체류를 마치고 무거운 표정으로 돌아온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

연민도, 냉소도, 심드렁한 무관심이라도 관여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를 보는 시각이 '팩트(fact)'의 결핍으로 왜곡되는 건 곤란하다.

이 회장은 성공한 기업인이다. 반도체사업을 일궈 한국을 먹여 살리는 캐시카우로 뿌리를 내리게 했고 디자인 혁명과 인재 육성으로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물론 실수와 실패도 있었다. 승용차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뼈아프게 철수했고 건강이 염려스러울 무렵을 전후해 외아들인 이재용 상무에게로의 지분 승계를 너무 서둘렀다. 삼성이(또는 삼성 수뇌부가) 과거 정권들과 불건전하게 교류한 것에 대해서도 이 회장의 책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렇게 198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 회장이 삼성을 아우른 20년의 기업력에는 숱한 역사적ㆍ개인사적 변수들도 함께 녹아있다. 삼성과 이회장 만이 아니라 한국경제를 지탱하는 대다수의 주류 기업과 기업인들이 마찬가지다. 섣불리 내려 놓을 수 없는 부담스러운 등짐을 예외없이 지고 있다.



이 회장은 입국의 변으로 "지난해의 소란은 모두 내 책임"이라고 자책했지만 그 이전까지의 공(功)은 누구의 몫인가.

개인의 착오와 역사의 강요가 버무려진 허물과 기업을 키워 국부를 일군 공의 무게를 전혀 다른 시점의 저울로 달아야 하나. 공은 당연하고 과는 용서할 수 없다는 식의 단죄법이 누구를 위해 유익한가.

1980년대의 '재벌공화국'이 지금 '삼성공화국'으로 대체됐다고 해서, 대우가 망하고 현대와 LG가 흩어졌다고 해서, 동류의 대부분이 짊어진 실수와 실패의 보따리를 유독 삼성과 이회장만이 풀어 헤치고 다시 묶어 등에 지기를 반복하게 하는 건 아무래도 지나치지 않은가.


이러한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이 회장 스스로도 보다 담담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회장 귀국 이전부터 삼성의 브레인들은 '뭔가 보여줄 것'을 찾느라 분주했다. '사회공헌'을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건 어긋난 접근법이다. 사회공헌은 경영활동의 한 축으로서만 유효할 뿐, '반삼성'과의 화해 수단으로는 쓸모가 없다. 어색할 뿐 아니라 반발을 살 수도 있다. 반삼성의 공격수들은 삼성의 사회 공헌과 이회장의 사회공헌을 철저히 분리해서 본다.

그렇다고 사재를 털어 사회에 내놓는 것도 길이 아니다. 스스로 그룹 총수 역할을 포기할 게 아니라면, 삼성그룹의 불안한 지배구조 보완을 위해 한 푼이라도 지분확보에 투입해야 할 시점이다.

사실 '반삼성'은 과대포장 돼 있다. 안기부 불법도청 사건의 후폭풍이 한창이던 지난해 10월의 여론조사에서도 국민 2명 중 1명은 '이건희 회장이 우리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줬다'고 평가했고 10명 중 8명이 '삼성의 기여'를 인정했다.

물론 일부 시민단체와 정치권의 삼성 공격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동어반복과 낡은 레파토리가 이대로 계속된다면 결국 식상해진 지지층이 이탈하고 말 것이다. 흘러간 옛노래를 언제까지고 계속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서둘러 '대책'을 내놓는 것 보다는 이 회장이 삼성의 '오너 경영자' 자리로 확실하게 되돌아오는 게 옳다는 생각이다.

타계한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3남 이건희를 후계자로 지명한 후 칠순을 넘긴 나이에 반도체 사업의 씨를 뿌렸다. 고인 생전에는 왈가왈부 말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누구도 호암의 업적을 부정하지 않는다. 사회의 주류가 삼성을 인정하는 건 대를 이어 최고기업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제 이 회장도 2대 총수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시기가 왔다. '10년 후 삼성이 뭘 먹고 살아야 할 지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던 그 마음 그대로 삼성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 삼성 총수로서의 소명이요 의무다. 수십년 앞을 내다보는 사업은 월급쟁이 최고경영자가 손대기 어려운 영역에 있다.

귀국 이후 장기간의 칩거나 침묵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도 사람인지라 울화를 달래기가 쉽지 않겠지만 결국 '지난해의 상처'도 짊어진 등짐 안으로 차곡 차곡 개어 넣을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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