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의 집착, 투자자의 비용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 2005.12.06 14:27
글자크기

-김준형의 '돈으로 본 세상'-

코스피지수 1300, 코스닥지수 700.
증권 재테크를 담당해온 기자에게 주변의 문의가 없을 리가 없다. 초중고 동창, 친척, 심지어 군대 고참까지... 증시 덕에 오랫만에 안부인사를 나누게 된다.

남들 다 지나간 뒤에 모든 팩트를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탓에 법조인, 교수(특히 투자론 전공)와 더불어 '3대 뒷북'이라고 불리곤 하는 기자의 핸드폰이 뜨거워지는걸 보면 증시가 단기 과열권에 접어들었다는 느낌이다.



'뒷북'은 원래 그러려니 치지만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제대로 된 투자조언을 들려주는걸 업으로 하는 직종이다. 특히 주식시장에 활기가 넘치게 되면 보고서가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다. 그런데 오랫동안 주식시장을 지켜보다 보면 좋든 싫든 애널리스트가 내놓는 수치와 투자의견 뒤의 '히스토리'를 보게 된다.
분석은 틀릴수도 있고 맞을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몇년째 변치않는 '집착'의 결과일때는 이야기가 다르다. 신념을 넘어 오기 혹은 자포자기가 돼버린 분석을 믿고 따르는 투자자들이 불행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주 발표된 보고서 한장이 새삼 그런 생각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모 증권사의 인터넷 담당 애널리스트 A씨는 전자상거래 기업인 B사에 대한 투자의견을 '매도(SELL)'로 하향했다. 5일 종가 1만950원인 이회사의 적정주가는 8500원을 제시했다. 앞으로 20% 이상은 떨어져야 마땅하다는 말이다. 이 회사 주가는 한달동안만 30% 올랐고, 2040원이던 연초와 비교하면 무려 다섯배 가까이 올랐다. A씨는 이렇게 주가가 올라버린데 대해 '시장이 오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참 잘 나가는 종목에 대해 이같은 의견을 제시한 것은 용기가 있다고 평가해줄 만하다. 하지만 2003년 이후 3년간 A씨가 B사에 대해 발표한 40차례의 종목 보고서(코멘트 포함)를 살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40차례의 보고서에서 A씨가 '매수' 의견을 낸 적은 한번도 없다. '유보(HOLD)' 혹은 시장중립'(MARKETPERFORMER)'이었다.

지난 8월에는 적정주가 3530원(당시 주가 3860원)에 투자의견 '유보'를 제시했다. 그로부터 석달반이 지난 지난주 '매도'투자의견을 내며 제시한 적정주가는 8500원. 단 한번도 사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 '매도'의견을 내면서 적정주가는 석달만에 2.5배로 올린걸 보고 투자자들은 어리둥절 할수 밖에 없다.

A애널리스트와 B사의 악연은 증권가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이다. B사의
월별 영업수지가 흑자로 돌아서고 주가도 한창 탄력을 받던 지난해 초 A씨는 "보수적인 회계처리를 적용할 경우 B사는 사실상 적자"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회사측은 증시 사상 처음으로 증권사 보고서에 대해 공정공시를 통해 반박을 했고, 소송 일보직전까지 갔다. 피차 하루 이틀 '장사'할 것도 아닌 만큼 물러서긴 했지만 양측의 '감정'이야 봉합될 일이 아니었음은 짐작하고 남을만 하다.


반대방향의 신념을 찾는것도 어렵지 않다.
C증권사의 통신담당 애널리스트 D씨가 E사에 대해 내놓는 보고서를 보자. 3년간 100여차례의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이 애널리스트가 내놓은 유일한 투자의견은 '매수(BUY)'였다.
주가가 16만9000원일 당시인 2003년초 22만 5000원의 목표가를 제시했지만 이 회사 주가는 아직 19만500원이다. 가장 최근에 제시한 목표주가는 23만5000원. 500대 중반이던 주가지수가 2.5배 오르는 동안, 스스로도 목표주가를 5%도 못 올릴 정도라면 6개월 기간을 상정하고 내놓는 보고서를 통해 3년동안 '매수'를 외칠만한 종목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분석 대상이 국내 대표기업일 경우 '매도'의견을 제시할 배짱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은 감안하더라도 이정도 되면 투자조언인지 '짝사랑 편지'인지 경계가 모호해진다.

시장이 늘 옳은 것은 아니지만, 애널리스트가 ;시장이 오해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건 당당한 태도는 아니다. 따지고 보면 이동평균선이니, PER이니 하는 분석지표들에는 오해를 포함한 시장심리 자체가 분석대상이기 때문이다.

워런 버핏이 기술주에 대한 불신을 떨치지 못했던 것은 몇년뒤에 '결과적으로' 맞았을지 모르지만, 스스로 1990년대 후반의 폭발장세를 놓친 것을 후회한다고 밝힌바 있다. 거꾸로 정보기술(IT) 붐이 만든 스타 메리 미커가 거품 붕괴 이후에도 마냥 'GO'를 외치다가 이제서야 '거봐'하고 나서는 것도 볼썽 사납다.

애널리스트의 집착의 대가는 애널리스트가 아니라 투자자가 치러야 한다. 투자의견이나 목표주가만을 믿고 행동에 나서기에 앞서 결론 뒤에 숨은 히스토리를 살펴봐야 하는 이유이다.

그래도 어차피 투자를 하기로 결정했다면 낙관론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게 낫다. 비관론자는 평생 돈을 못벌지만, 낙관론자는 돈벌 확률이 50%는 되기 때문이다.
'모든 리스크중에 가장 확실한 리스크는 아무것도 안하는 리스크'...시간날때마다 되새겨볼만한 재테크의 기본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