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병칼럼]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머니투데이 강호병 금융부장 2005.07.18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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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는 아테네 교외에 살면서 지나가는 나그네를 초대한다고 집에 데려와 쇠침대에 눕히고는 키가 침대 길이보다 길면 잘라 죽이고 짧으면 다리를 잡아 늘려죽였다. 이 날강도는 결국 영웅 테세우스에게 자신이 저지르던 악행과 똑같은 수법으로 죽임을 당했다.

 지금 교육문제가 딱 그모양새다.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에는 본고사, 기여입학제, 고교등급제를 금지한다는 이른바 `3불(不)정책'이라는 견고한 쇠침대가 있다. 학벌이라는 기득권 재생산과 미래의 계층양극화를 막는다는 공동체적 사고에 의해 형성된 이 침대에서 벗어난 대학의 입시정책은 곧바로 철퇴를 맞는다.



서울대가 2008학년도 입시기본계획에서 신입생 선발의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내신반영비율을 최소화하고 통합교과형 논술을 강화하겠다고 했다가 정부 및 여당, 교육시민단체로부터 본고사 부활이라는 몰매를 맞고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사교육 열풍을 불러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교육기회가 결정되는 양극화를 부추길 것이란 비난이 잇따라 나왔다. 내친 김에 대학서열제를 규탄하는 목소리와 서울대망국론도 다시 나왔다. 정치권은 3불정책의 법제화도 검토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진학하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명문대 가고 싶은 욕구가 있고, 대학이라면 가급적이면 우수학생을 뽑고 가르칠 욕구가 있다. 한국의 부모 또한 자식을 명문대 입학시키고픈 심정이 대단하다. 그런 감정들이 있는 한 어떤 형태의 대입전형제도를 채택하건 공교육이 채워주지 못하는 빈틈을 사교육으로 메우고자 하는 열기는 생기게 마련이라고 본다.

수능을 강화하면 수능과외가, 내신을 강화하면 내신과외가 또 기승을 부릴 것이다. 학생을 성적에 관계없이 `뺑뺑이'라는 추첨으로 뽑거나 일정수준 이상의 커트라인을 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임의추출하여 각 대학에 할당하지 않는 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입시경쟁이 갖는 희비는 거쳐가야할 통과의례다.

 여기서 서울대 방안의 호불호를 논할 생각은 없다. 또 서울대 돌출행동의 시기적 타당성여부를 논할 생각은 없다. 문제삼고 싶은 것은 서울대 방안의 장단점이 충분히 설명되고 토론될 시간조차 갖지 못한 채 `기득권의 재생산', `학력서열화 기도'라는 이데올로기 공세를 펴며 여론재판의 단두대에 보내버리는 행태다.


 한국 교육의 문제를 대학입시제도만으로 풀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또 완전무결한 선발제도도 없을 것이다. 서울대 아성론, 독점론이라는이데올로기가 앞선 채 대학마다의 자율성이 가미된 절충적인, 중간적인 선발제도마저 충분히 논의될 수 없다면 교육문제는 해답을 못구하고 선택은 결국 극단으로 치닫을 것이다.

 성장과 발전의 추동력은 경쟁이다. 경쟁이 없으면 우선 편하겠지만 경쟁력 훼손과 낙후는 감수해야한다. 1등상품, 1등기업도 결국 글로벌 경쟁에서 배양됐다. 경쟁이 주는 스트레스가 심하고 많은 낙오병과 함께 사회곳곳에서 쏠림현상을 낳지만 그것을 보듬는 문제는 다른 것이고 경쟁자체를 없애는 쪽으로 가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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