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기업들의 제조업 공장이 동유럽과 아시아로 이전하면서 고임금에 안주해온 노동계의 입지가 축소된데 따른 것이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10일 유럽에서 노조의 힘이 최근 몇 년 사이 썰물처럼 퇴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1980년대 초만 해도 50%대였던 영국의 노조 조직률은 최근 30% 선으로 추락했다. 프랑스는 지난 20년 사이 유럽에서 노조 조직률이 가장 낮은 10%로 곤두박질쳤다. 같은 기간에 이탈리아의 경우 50%에서 35%로 조직률이 줄었다. 이처럼 노조 조직률이 떨어진 데는 노조에 대한 불신도 한몫했다. 프랑스의 한 조사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노조를 믿지 않는다'는 응답이 50%로 2년 전(42%) 보다 높아졌다. 독일에서는 "노조의 힘이 더 약화돼야 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올 정도다.
독일금속노조의 하르트무트 메인 사무국장은 "가장 큰 문제는 노조가 유럽의 단일시장에 적응하지 못한데 있다"고 말했다. 회원국이 15개에서 25개로 유럽연합(EU)이 단일 경제권으로 통합되고 기업들이 임금이 싼 동유럽과 아시아로 공장을 옮겨가는 동안 노동계가 적절한 대응을 못 했다는 것이다. 즉 상품과 자본은 국경을 뛰어넘어 자유롭게 이동하는 동안 노동자들은 여전히 국경의 한계에 묶여있다.
이렇다보니 독일 하노버의 자동차 공장 노동자는 같은 제품을 만들면서도 10%의 임금만 받고 일하는 폴란드 포츠난 공장의 노동자들과 경쟁해야할 처지가 됐다. 사측으로서도 노사협상에서 고임금을 받는 독일 노동자들을 효율적으로 압박하기가 쉬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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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유지에 안간힘=상황이 어려워지면서 노동자들의 관심은 임금이 아니라 이제 단순히 고용을 유지하는데 집중되고 있다.
폴크스바겐의 노동자들은 자동차 판매가 줄어 회사의 수익이 급감하자 올들어 임금을 지난해보다 9% 감축하는 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대신 일정기간 고용을 보장받기로 했다. 다임러크라이슬러.지멘스.도이치텔레콤.보쉬 등 다른 유럽 대기업에서도 유사한 노사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 이들 기업 노동자들은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상여금 반납.노동시간 연장.탄력근로제 등 악조건을 받아들이고 있다.
IHT는 "지금 추세라면 유럽도 미국처럼 산별노조 등 상급 단체 대신 기업별 단위 노조 차원의 노사 협약이 확산되고 사측이 유리한 협상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