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한인들①]웰스파고 손성원 부행장

머니투데이 정희경 특파원 2002.07.12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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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B 의장 자리에 관심있다

편집자주 텃새가 높기로 유명한 월가에도 한국인은 있습니다. 머니투데이는 세계 금융의 메카 월가에서 맹활약하는 한국인을 소개하는 '월가의 한인들'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그들의 성공담, 꿈과 야망을 독자 여러분께 고스란히 전달하고자 합니다. 월가의 한인들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국제 금융시장의 치열한 접전지, 월가 안팎에는 손꼽히는 전문가들이 포진하고 있다. 월가가 자리한 뉴욕 맨해튼에서 활약하는 인사들도 있지만 외곽에 머물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워싱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앨런 그런스펀 의장이 단적인 예다.

[월가의 한인들①]웰스파고 손성원 부행장


“텃새가 심한 월가에서 그런 한국인이 있다면…” 바로 미국내 자산 규모로 3위 은행인 웰스 파고의 손성원 수석부행장을 꼽을 수 있다. 그는 미국 주식시장에 큰 재료인 경제지표가 발표될 때면 유수 언론들의 최우선 인터뷰 대상이다. 중서부 미네소타주의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그가 이런 각광을 받는 것은 미국 경제의 흐름을 꿰뚫고 있다는 평가 때문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해 말 미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가장 정확하게 예측한 인물로 손 부행장을 선정했었다.



손 부행장이 미국에 온 것은 광주일고를 졸업한 1962년이다. 단돈 100달러를 쥐고 생면부지의 땅에서 자신을 개척한 지 올해로 40년째. 그는 미국 최고의 이코노미스트로 자리잡은 성공한 한국인이다.

“한국 경제 참 문제가 많았죠. 왜 이리 어려울까 걱정을 하다가 경제학을 택하게 됐습니다.” 걱정과 열의로 출발한 손 부행장은 플로리다 주립대를 3년 만에 그것도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또 미시간 웨인대를 거쳐 피츠버그대에서 2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대학 사상 최단 기록이었다. 이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회 선임 이코노미스트로 발탁된 그는 매주 직보되는 경제동향 분석을 맡았다. 그린스펀 의장을 이 곳에서 만났다.



손 부행장은 백악관을 떠난 후 월가의 잇단 제의를 마다하고 지금의 웰스파고와 합병된 노스웨스트 은행 부총재 자리를 받아들였다. “사람 살기가 좋은 곳이었다”고 운을 뗏으나 젊은 나이(당시 27세)에 맡기 힘든 중책이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동양인으로 뜻을 펼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성원 손”(Sungwon Sohn)이 월가에 알려진 것도 이 때부터 였다.

그는 매일 새벽 6시 45분에 출근, 7시 간부회의로 일과를 시작한다. 경제동향 분석은 물론 인수합병(M&A)과 자산관리, 상업은행 업무 등 주요 분야 의사결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강점은 실물 경제에 대한 해박한 이해다. 6000여개 지점에서 올라오는 자료, 정부 발표, 연구기관 보고서 등을 10여명의 비서를 통해 꼼꼼히 점검하는 그는 현장 방문과 고객과의 통화를 통해 큰 흐름을 잡는다. 9.11테러 사태 직후에는 소비 동향을 읽기 위해 보석상부터 제조업체까지 챙겼다. 한 발 늦기 마련인 정부의 공식적인 데이터에만 의존하지 않는 그의 부지런함은 30년 가까이 지속됐고, “최고”라는 수식어를 만들어 냈다.

[월가의 한인들①]웰스파고 손성원 부행장
미국 경제에 대한 손 부행장의 전망은 밝은 편이다. “펀더멘털이 괜찮습니다. 우선 개인 소득이 계속 늘고 있고, 집값 상승에 따라 실직 구매력이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재고도 자동차를 중심으로 확충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부족한 재고를 늘리기 위해 생산을 늘리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소득은 늘어나는 선순환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설비투자 역시 텔레콤이나 항공 부문이 부진하지만 컴퓨터나 경트럭 등은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는 올해와 내년 미국 경제가 성장잠재력 수준인 3~3.5%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 침체 때 크게 위축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분간 성장세도 급격해질 수 없으나, 괜찮은 상태라는 설명이다.


달러화에 대해서도 급락할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동안 너무 강세였죠. 경상수지 적자가 커져 내년의 경우 하루 16억 달러, 후년 에는 20억 달러에 이를 것입니다. 반면 증시 부진과 M&A 위축으로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은 줄면서 미국 투자자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곧 점진적인 하락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그러나 성장률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고, 가장 안전한 투자처이기 때문에 급락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경제학으로 그를 이끈 한국경제는 어떨까. 손 부행장은 한 마디로 “전망이 밝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이후 내수 기반이 마련됐고, 이제는 수출이 잘 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또 미국이 구조조정을 통해 생산성을 높인 것과 마찬가지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의 눈에 비친 한국 경제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은 상태다. 우선 수출 품목 다변화와 부가가치 제고에 힘써야 한다고 손 부행장은 주문했다. “수출이 중요합니다. 현재 반도체 비중이 20%에 달하죠. 너무 높습니다. 수출시 순익 마진도 높여야 합니다. 자동차의 경우 10년 보증수리(워런티)를 채택했으나 비용을 제하면 실속이 있는 지 의문입니다. 반대로 브랜드 인지도를 넓혀가면서 부가 가치 높은 상품은 수출하고 있는 삼성은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손 부행장의 지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단기적으로 내수가 중요하지만 앞으로 저축을 늘리면서 투자를 증진할 수 있는 정책 조합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정부가 시장경제 원칙을 강조하지만 간섭은 아직 많은 편입니다. 특히 금융 시스템이 선진화해야 합니다. 은행장 인사에서 아직 낙하산식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정부의 관여를 줄이고, 시간이 걸리겠지만 선진 금융기법을 많이 도입해야 합니다.”

[월가의 한인들①]웰스파고 손성원 부행장
그는 한국 주식시장에 대해 변동성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투기적인 요인도 있는 것 같고… 아무튼 앞으로 많이 가꾸어야 합니다. 저는 개인 자산의 대부분을 주식에 투자했습니다. 미국에는 장기 투자자가 많습니다. 한국도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 나갔으면 합니다.”

월가를 움직이는 경제학자인 손 부행장은 인터뷰 도중 나이는 언급하지 말아 달라고 주문했다. (미국 언론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나이를 쓰지 않는다.) 그러나 기자에게는 할 일이 더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사실 그에게 전환점은 있었다. 미네소타 주의 세인트 클라우드대 총장에 취임한 게 일례다. 그는 동양인으로 처음으로 주립대 총장에 올랐으나 아내가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는 바람에 열흘 만에 사퇴했다.

“여러 가지 기회가 있었습니다만…” 그는 ‘FRB 의장 자리는 어떻습니까’라는 질문에 “좋지요. 개인적으로 한번 해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후원도 뒷받침돼야 하며, 확률은 낮습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그린스펀의 은퇴설이 종종 거론되며, 후임자 하마평까지 무성하다. 손 부행장은 그린스펀 의장과는 닉슨 전 대통령 시절 인연으로 허물없이 만나는 사이다.

“그린스펀 의장이 물러날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이 자리를 매우 좋아하고 능력도 있습니다. 임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시 재지명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설사 임기를 끝낸다 하더라도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으면 의장직을 계속 맡을 수 있습니다.” 손 부행장의 ‘보이지 않는’ 도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손성원 부행장 약력: 1945년생. 광주일고 졸업. 62년 도미. 플로리다 주립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MBA, 피츠버그대 경제학 박사, 닉슨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선임이코노미스트,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 미네소타주 세인트 클라우드대 총장, 은행가협회장, 웰스파고 은행 수석 부행장 겸 수석 이코노미스트(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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