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슥한 동네 등산로 무서웠는데"…'노란 조끼' 이들 뜨자 안심[르포]

머니투데이 안양(경기)=오석진 기자 2024.05.0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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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슥한 동네 둘레길 순찰 나선 노인들…퇴직 경찰도 있어
'순찰지킴이'로 일하면 월 70만원 수당 지급…"노인 일자리 문제 해결도"
안양동안경찰서와 연계 근무…경기남부경찰청, 시민안전 모델 우수사례로 선정

3일 오전 9시 CCTV 작동을 점검하는 시니어 순찰대 조장의 모습/사진=오석진 기자3일 오전 9시 CCTV 작동을 점검하는 시니어 순찰대 조장의 모습/사진=오석진 기자


'휘리릭~'

3일 오전 9시께 평화롭던 경기 안양시 호계공원 둘레길의 정적을 깨는 소리가 있었다. 주로 65세 이상 퇴직 경찰이나 경비업무에 종사했던 이들로 구성된 '순찰지킴이' 대원 A씨의 호루라기 소리였다.

순찰지킴이는 안양동안경찰서와 협력해 근무하고 있다. 대원들은 젊은 경찰도 버거운 가파른 둘레길 순찰을 이들이 전담한다. 모자를 쓰고 배낭을 맨 모습이 일반 등산객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A씨의 눈은 매의 눈보다 매섭다. 순찰지킴이라고 적힌 노란 조끼엔 경찰 사이렌 불빛도 번쩍인다.



대원들의 일과는 오전 9시 둘레길 시작점에 모여 CCTV(폐쇄회로TV)를 점검하며 시작된다. CCTV가 달린 기둥에 달린 버튼을 누르자 "안양동안경찰서입니다. 지금 모습 경찰서에서 잘 보입니다"라고 경찰이 응답한다. CCTV가 잘 작동되는 걸 확인하자 이들은 둘레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원들은 세 명이 한 조를 구성해 하루 3시간 동안 6㎞에서 많으면 9.5㎞를 순찰한다. 주된 순찰 경로는 △관악산 둘레길 △호계공원 △자유공원 △망해암 등산로다.



둘레길이나 등산로는 인적이 드물어 사고가 발생해도 신속한 파악이 어려워 순찰지킴이의 역할이 중요하다. 순찰지킴이는 순찰 업무 외에도 파손된 계단 및 비상벨 같은 시설물도 점검한다. 경찰에 따르면 순찰이 시작된 지난 2월부터 지금까지 고장 난 비상벨을 4개 발견했고 파손된 계단 2곳을 확인했다.

시민들의 만족도는 높았다. 산책을 하던 50대 여성 B씨는 "오늘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산책하다 평소 자주 본다"며 "덕분에 마음이 안심되고 편하게 걸어 다닐 수 있다"고 밝혔다. B씨는 "누구 아이디어인지 참 칭찬해주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남편과 함께 온 여성 C씨는 "오늘은 남편과 왔지만, 이곳은 산책하기가 좋아 친구들끼리도 많이 온다"며 "관악 둘레길 사건 이후로 인적 드문 곳을 걸어가기만 해도 무서웠는데 아무래도 순찰 조끼를 입은 사람들을 보니 반갑고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月 70만원 수당도…"직장생활 끝나도 할 일 있음에 감사해"
계단길을 돌아보는 시니어 순찰대/사진=오석진 기자계단길을 돌아보는 시니어 순찰대/사진=오석진 기자
안양 동안경찰서는 지난해 8월 서울 관악산 산책로에서 대낮 출근길에 초등학교 교사가 성폭행당하고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순찰지킴이를 만들었다. 한정된 경찰 인력을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둘레길에 상시 배치하기 어려워서다. 현재 안양시 전체에 48명의 순찰지킴이가 있고, 근무자는 월 70만원 상당을 수당으로 받는다.

현재는 치안 공백을 막고 노인 일자리도 확보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경기남부경찰청는 안양동안경찰서 순찰지킴이를 시민안전 모델 우수사례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날 순찰대 조장으로 참여한 A씨는 "은퇴 전에는 컴퓨터 쪽 사업을 했었다"라며 "운동하는 겸 봉사하는 자세로 순찰하러 다닌다"고 밝혔다. A씨는 "나이가 들어서도 누군가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참 보람차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순찰대원 60대 D씨는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한 2020년 이후로 처음 갖는 일자리에 뿌듯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D씨는 "직장생활이 끝나고 나서도 할 일이 있음에 감사하다"며 "번 돈으로 손자에게 용돈을 주기도 한다"고 했다.

안양시니어클럽 관계자는 "과거엔 쓰레기를 줍는 등의 단순 작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이뤄졌다면 이번엔 보다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마련된 것 같다"며 "실제로 경쟁률도 무척 치열했고 선발된 노인분들 역시 만족도가 상당하다"고 밝혔다.

순찰대가 다니는 순찰 코스 중 하나인 호계공원 둘레길의 모습/사진=오석진 기자순찰대가 다니는 순찰 코스 중 하나인 호계공원 둘레길의 모습/사진=오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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