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 하얗다" 쪽방촌 충격에 눈물 삼킨 이재용…몰래 한 20년 후원

머니투데이 한지연 기자 2024.04.22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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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상무·가운데)이 서울 영등포 요셉의원을 방문해 고(故) 선우경식 원장(오른쪽)의 안내를 받으며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사진=위즈덤하우스 제공,뉴스12003년 6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상무·가운데)이 서울 영등포 요셉의원을 방문해 고(故) 선우경식 원장(오른쪽)의 안내를 받으며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사진=위즈덤하우스 제공,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쪽방촌의 극빈 환자들을 치료하는 '요셉의원'에 20년 넘게 후원을 해 온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요셉의원의 설립자인 고 선우경식 원장의 삶을 소개하는 전기 <의사 선우경식>-'쪽방촌의 성자, 요셉의원 설립자'가 11일 출간되면서다.

책 가운데 '쪽방촌 실상에 눈물을 삼킨 삼성전자 이재용 상무'부분에서 이 회장의 일화가 소개된다. 책에 따르면 이 회장은 상무였던 2003년 6월 27일, 서울 영등포 쪽방촌에 있는 요셉의원을 찾았다. 앞서 선우 원장이 같은 달 3일 호암상 사회봉사상을 받은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다. 호암상은 고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아호를 따서 만든 상으로, 국내외 각 분야에서 공헌한 인물들에게 매년 시상한다.



평소 이 회장은 사회공헌에 관심이 컸는데, 선우 원장의 선행에 감명을 받고 요셉의원을 후원하고 싶어 직접 방문했다고 한다. 이 회장은 회사 관계자들과 함께 요셉의원을 방문해 주방과 목욕실, 세탁실 등 병원 곳곳을 둘러봤다. 선우 원장이 이참에 쪽방촌을 직접 방문하길 권했고, 이 회장이 동의하면서 근처의 단골 환자인 쪽방촌 가정에 함께 방문했다.

단칸방 안에는 술에 취한 남자와 맹장 수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자, 아이 둘이 있었다. 저자는 "이 회장이 작은 신음 소리를 내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고 묘사했다. 당시 동행했던 직원은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의 모습을 처음 보고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이 회장은 선우 원장에게 "솔직히 이렇게 사는 분들을 처음 본 터라 충격이 커서 지금도 머릿속이 하얗다"고 쪽방촌 방문에 대해 말했다. 이 회장은 이날 양복 주머니 안에서 1000만원이 든 봉투를 선우 원장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이후부터 매달 월급의 일정액을 기부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이 회장은 평상복 차림으로 몇번이나 요셉의원을 찾기도 했고, 선우 원장과 함께 사회공헌사업을 모색하며 '밥집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노숙인과 극빈자를 위한 밥집 운영을 위한 건물을 삼성전자가 짓기로 하고 몇 년에 걸쳐 프로젝트를 추진했지만 인근 초등학교 학부모들의 항의로 결국 무산됐다.

이 회장은 요셉의원 방문과 후원 사실을 비밀로 하길 원했다. 때문에 이같은 선행이 외부에는 공개되지 않다가 책이 출간되며 20년만에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선우 원장은 1945년 평양에서 태어나 가톨릭 의대를 졸업했다. 미국에서 내과 전문의로 수련한뒤 귀국했다. 이후 1987년 서울 관악구에 노숙자와 알코올 의존증 환자 등 가난한 이들을 위한 무료 의료시설 요셉 의원을 세웠다. 평생 무료 진료에 힘써오다 급성 뇌경색과 위암을 얻고 2008년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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