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만에 만난 韓日산업장관, 민간까지 '진짜 복원' 향한다

머니투데이 김훈남 기자, 최민경 기자 2024.04.23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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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2일(현지시간) 오전 일본 경제산업성 접견실에서 사이토 겐 일본 경제산업성 대신(장관)과 면담을 갖고 산업·통상·에너지 분야 전반에 대한 한·일 정상 간 합의사항의 후속 조치와 미래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다. /사진제공=산업부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2일(현지시간) 오전 일본 경제산업성 접견실에서 사이토 겐 일본 경제산업성 대신(장관)과 면담을 갖고 산업·통상·에너지 분야 전반에 대한 한·일 정상 간 합의사항의 후속 조치와 미래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다. /사진제공=산업부


한국과 일본, 양국의 산업 장관이 만났다. 2018년 이후 6년만의 정식 회담이다. 양국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공급망을 비롯 에너지, 통상 등 전방위적 협력을 강화키로 했다. 한일중 경제통상장관 회의, 한미일 산업·상무장관회의 등의 개최에도 협력하기로 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22일 일본 도쿄에서 사이토 겐 일본 경제산업대신을 만나 산업·통상·에너지 분야 전반에 대한 한·일 정상 간 합의사항의 후속 조치와 미래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회담은 2018년 이후 6년 만에 상호방문을 통한 정식회담이다. 지난해 3월 한·일 정상회담과 셔틀외교 재개 1주년을 맞아 양국 관계 개선의 연장선상 차원에서 이뤄졌다.

먼저 양측은 한·일 정상외교를 통해 기업 간 협력이 본격화되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양국 정부와 경제계 간 협력을 장려하기로 했다. 이날 도쿄에선 일본 도레이사와 반도체 핵심소재기업 A사가 총 1억2000만 달러 규모의 투자를 확정하고 투자 신고서를 제출했다.



양국 정부는 한·일 경제인회의, 재계회의 등 경제단체 간 협력을 촉진하고 상호 투자기업 지원을 위해 산업부와 SJC(Seoul-Japan Club), 경제산업성과 주일한국기업연합회 간 정기적 소통채널을 구축·운영하기로 했다.

특히 이번 산업통상장관회담에선 한일중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리는 한일중 경제통상장관 회의, 한일중 비즈니스 서밋 등도 논의됐다. 한일중 경제통상장관 회의가 개최되면 2019년 12월 23일 중국 청두 정상회의 계기로 열린 제12차 한일중 경제통상장관회의 이후 5년 만이다.

한일중 3국 정상회의는 오는 5월 26~27일 서울 개최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경제부처에서도 관련 안건과 행사를 준비하는 모양새다. 산업부가 주관하는 한일중 경제통상장관 회의는 한일중 3국 정상회의에 앞서 경제통상 분야 협력을 사전 점검하는 성격의 자리다. 한국의 산업부 장관, 중국 상무부 부장, 일본 경산성 대신이 참여하며 3국 정부는 회의 결과를 정상회의 의제로 상정한다.


안 장관과 사이토 대신은 한일중 3국 간 경제통상 협력의 중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사이토 대신은 "3국 간 협의되고 있는 제13차 한일중 경제통상장관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주최국인 한국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상반기 내 추진 중인 한미일 산업·상무장관회의도 양국이 협력하기로 했다.

아울러 양측은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양국 간 탈탄소·신에너지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일본도 무탄소에너지(CFE) 이니셔티브에 참여한다. 글로벌 탄소규제 대응과 글로벌 청정기술·제품 적정 평가 구조 마련 등에 대해 과장급 기후정책협력 워킹그룹(WG) 개설을 통해 협력하기로 했다. 청정수소와 암모니아 협력도 추진한다. 국장급 한일 수소협력대화를 통해 협력방안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공급망 안정화와 관련한 정보공유 등을 실시하는 대화 설립에 합의했다.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제도 개혁, 투자원활화 협정의 WTO 체제 편입 및 전자상거래 협상 타결 등 WTO 체제 개혁을 위해서도 협력하기로 했다.

'장관급' 통상물꼬 튼 韓日…공급망 넘어 민관 협력 '진정한 복원' 이룬다

한일 수출규제부터 산업통상장관 회담까지/그래픽=조수아한일 수출규제부터 산업통상장관 회담까지/그래픽=조수아
2019년 7월. 일본은 반도체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필수 소재인 포토레지스트(PR)·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플루오린 폴리이미드(FPI) 등 3개 품목에 대해 한국 수출 허가 조치를 취했다. 이어 한국을 일본의 백색국가 명단(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서 양국 간 경제 협력이 끊겼다.

우리나라는 필수 소재에 대한 기습 수출 규제에도 대체 수입선 확보와 국내 대체 생산 등으로 반도체와 OLED 생산중단 사태를 막아냈다. 이후 코로나19(COVID-19)와 글로벌 경제 패권 경쟁 등으로 나타난 공급망 차질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일본의 수출 규제가 오히려 '예방주사'가 됐다는 평가도 생겼다.

'기습'과 그에 대한 '방어' 측면에서만 본다면 분명 '합격점'이다. 하지만 겉모습과 달리 내면에서 잃고 있는 것도 적잖았다. 반도체 등 유사한 주요 전략산업을 갖고 있어 협력하고 때때로 경쟁해 온 한일 양국이 거리를 두면서 미래 성장을 위한 기회도 놓쳤다는 게 정부 안팎의 판단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22년 현 정부 출범 이후 2년여 일본과의 '정부차원' 채널 회복을 꾀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수출 통제를 비롯해 감정적 갈등이 많았지만 일본과는 반도체 같은 주요 산업의 R&D(연구개발) 같은 분야에서 분명 협력해야하는 사항이 많다"며 "우리가 수출통제 대응을 잘한 것은 사실이지만 양국 민간이 진행 중이던 여러 프로젝트가 무산돼 반도체 산업 성장기회를 살리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3월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한일정상회담 이후 양국 산업부는 곧바로 일본과 수출규제 해소 작업에 착수했다. 한국과 일본 양국은 그해 4월과 7월 상대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제외조치를 복원했고 WTO(세계무역기구)에 제기한 무역분쟁을 마무리했다.

이후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통상교섭본부장 시절부터 양국 간 산업통상장관 협의를 꾸준히 타진했고 이날 사이토 겐 일본 경제산업대신과의 1대 1 장관회담으로 이어졌다. 한국 산업부와 일본 경산성은 장관급 회담에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5년 만에 친선 축구대회를 열어 실무자 간 교류를 재개하고 화해무드를 강화했다.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일 재무장관 회의를 치른 이후 한일 양국의 산업장관이 만나면서 지난해 한일 관계개선 노력이 경제분야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일본 기업은 정부의 산업·통상정책방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점을 고려하면 장관급 회담이 단순한 보여주기 행사를 넘어 민간에서의 협력 분위기 조성으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도 적잖다.

한일 양국의 수출통제조치 해제는 이전 상태로의 복원을 의미했다면 이번 장관 회담은 민간에 양국이 협력 강화에 나섰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얘기.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 등 미래 핵심 전략산업을 두고 통상 마찰을 이어오는 가운데 한일 공동 이해관계가 늘어나면 경제 패권 경쟁에서의 대응력도 키울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일본산 장비·소재 사용 비중이 여전히 있고 장비·부품 업체 역시 일본과의 기술개발 협력을 이어오는 상황"이라며 "한일 정부가 공식적으로 협력 관계를 보여준다면 민간의 일본 기업 역시 한국기업과의 협력 기회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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