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전 그들이 있었다...단 4개 앨범으로 시대를 바꾼 'K팝 전설'[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김소연 기자 2024.04.11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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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당시 화보./온라인 갈무리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당시 화보./온라인 갈무리


"대한민국 대중가요의 역사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지금으로부터 32년 전인 1992년 4월11일, MBC '특종 TV연예'가 방송된 날 한국 K팝 역사에 굵디굵은 한 획이 그어졌다. K팝의 전설, '서태지와 아이들' 신드롬 시작이다.

1990년대, 트로트 느낌의 가요나 발라드로 점철돼 있던 대한민국 가요계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은 지각변동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당시 어두웠던 정치 지형과 맞물려 억눌려있던 10~20세대들에게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은 일종의 해방구가 됐다. 보수적이었던 한국 대중문화에 컬러를 입히고 저항정신, 시대정신을 도입한 것도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앨범마다 다른 스타일의 음악과 패션, 컨셉을 선보이고, 앨범 사이 '휴식기'를 가진 것, 사회 문제를 가사로 녹여낸 것, 무엇보다 랩으로 대변되는 힙합 문화를 한국에 들여온 것이 이들이다.

현재 범 세계적 트렌드로 자리 잡은 K팝, 그 시작에 자리한 아티스트가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데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4월11일, K팝 레전드의 위대한 시작
서태지와 아이들 1992년 MBC 출연 영상/유튜브 갈무리서태지와 아이들 1992년 MBC 출연 영상/유튜브 갈무리
"서태지씨와 그 친구들, 박수로 청해주시기 바랍니다."

방송 시작부터 귓전을 때리는 랩, 세 명의 칼근무, 형형색색 의상은 등장과 동시에 세상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랩과 힙합은 서태지가 가히 원조 격이다. 당시 대한민국 가요계는 트로트 느낌의 가요나 발라드 장르가 대부분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때 가요 프로그램 1위가 태진아일 정도다. 영어와 달리 받침이 많은 한국어는 구조상 랩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던 때였다. 랩과 힙합으로 무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은 대중문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기기 충분했다. 대중문화의 주 소비층도 이때부터 1020세대로 바뀌었다.


팀명 역시 낯설었다. 리더인 서태지외 2명은 다소 하대하는 느낌의 '아이들(BOYS)'로 치부한 것이 어색했는지 '특종 TV연예' 사회자인 임백천씨가 팀 이름을 '서태지씨와 그 친구들'이라고 바꿔 소개할 정도였다. 해외에서야 '뉴키즈온더블록' 등 '아이들'이라는 작법이 익숙했지만 한국에선 찾기 힘든 문법이었다.

혜성처럼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이지만, 세 멤버의 데뷔는 이보다 앞선다. 서태지는 앞서 국내 정통 록 밴드인 '시나위'에서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다. 록 뮤지션으로는 드물게 198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랩과 힙합에 빠져들게 되면서 댄스그룹을 만들 결심을 했다. 그러면서 춤을 배우기 위해 소개받은 양현석에게 자신이 작곡 중이던 음악을 들려주고, 팀을 결성하게 된다. 이주노는 박남정과 프렌즈로 활동하다가 마지막으로 팀에 합류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선언 인터뷰 모습 /사진=머니투데이 DB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선언 인터뷰 모습 /사진=머니투데이 DB
서태지와 아이들은 무명 시절이 없다. 데뷔인 1992년부터 1996년 은퇴 때까지 총 4개의 정규 앨범을 냈는데 1집 '난 알아요'부터 스타덤에 올랐기 때문이다.

1집 '난 알아요'·'환상 속의 그대', 2집 '하여가'로 대중적 인기를 누리던 서태지와 아이들은 3집부터 아티스트적인 면모를 선보인다. 3집 '발해를 꿈꾸며·교실 이데아', 4집 '컴백홈'에 메시지는 사회적으로도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이들이 4년 만에 은퇴를 발표했을 때 팬은 물론, 한국 사회가 큰 충격에 휩싸이기도 했다.

서태지 신드롬이 남긴 유산들
서태지와 아이들의 활동 기간은 4년으로 길지 않았지만, 이들의 족적은 후대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음악뿐만 아니라 대중음악계 문화까지 바꿔놨다. 앨범이 끝나면 휴식기를 갖는 문화나 립싱크, 요즘 K팝 그룹의 기본 자질로 꼽히는 격렬한 안무 역시 서태지와 아이들의 유산이다. 한국의 '비틀스'로 소개되는 BTS 역시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를 자주 오마주했다.

음악적으로 가장 가장 큰 유산은 힙합, 댄스 장르의 대유행이다. 서태지 데뷔 후 듀스, DJ DOC, 룰라 등이 데뷔하며 댄스, 힙합장르가 대중화됐다.

서태지 25주년 공연에 함께 한 서태지와 BTS/사진제공=서태지컴퍼니서태지 25주년 공연에 함께 한 서태지와 BTS/사진제공=서태지컴퍼니
또 3집부터 사회 문제를 가사에 녹여내면서 '문화 대통령'으로 군림했다. 전두환-노태우 정권 집권 여파로 유독 보수적이던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는 데도 기여했다. 연예인들의 '선한 영향력'도 이때 처음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4집 '컴백홈' 노래를 듣고 가출 청소년이 다수 집으로 돌아간 것이 뉴스에 보도됐기 때문이다. 저항정신, 사회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가사로 방송 출연이 금지되기도 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았고, 당시 연예계에 만연했던 PD 갑질 문화를 바꾸는 역할도 했다.

앨범 사이 휴식기를 가지고, 앨범마다 다른 장르의 노래와 컨셉을 선보인 것, 격렬한 댄스, 립싱크를 선보인 것도 이들이 처음이다. 대중문화의 주요 소비자 층이 1020세대가 된 것도 이때부터다.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이들은 이후 HOT와 젝스키스로 대표되는 아이돌 1세대의 주요 팬덤이 되기도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은퇴했지만 후배들의 '오마주'는 지속
걸그룹 영파씨(YOUNG POSSE)가 타이틀곡 '엑스엑스엘'(XXL)을 선보이는 모습, 이 노래는 컴백홈을 오마주했다. /사진=이동훈걸그룹 영파씨(YOUNG POSSE)가 타이틀곡 '엑스엑스엘'(XXL)을 선보이는 모습, 이 노래는 컴백홈을 오마주했다. /사진=이동훈
서태지와 아이들이 한국 대중문화계에 미친 영향은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서태지와 아이들이 4년간 남긴 곡들은 후배 가수들이 이후에도 지속 리메이크할 정도로 명곡으로 남아있다.

최근에는 DSP미디어가 선보인 힙합 걸그룹 '영파씨'가 미니2집 '엑스엑스엘(XXL)'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홈'을 오마주해 화제가 됐다. 멤버 5명이 모두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한 2000년대 이후 태어났지만, 음악에서만큼은 경계가 없는 셈이다.

K팝의 세계적 인기를 이끈 그룹 BTS도 서태지와 아이돌 노래를 자주 오마주한다. 2016년에는 KBS 가요대축제에서 '교실이데아'를 재현했고, 2017년에는 '컴백홈'을 리메이크했다. 같은 해 서태지 데뷔 25주년을 기념해 열린 합동 공연에서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히트곡 8곡을 불렀다.
양현석 전 YG 대표가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마약 무마 혐의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사진=뉴시스양현석 전 YG 대표가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마약 무마 혐의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사진=뉴시스
이렇듯 한국 가요계에 빼놓을 수 없는 그룹이지만, 서태지를 제외한 '아이들'은 갖은 사고로 현재 연예계를 불명예스럽게 떠난 상태다.

양현석은 와이지엔터테인먼트 (43,650원 ▼800 -1.80%)를 설립해 승승장구했지만 해외 원정도박, 성매매 의혹, 성접대 의혹, 마약수사 무마혐의 등으로 얼룩져 활동하지 않고 있다. 이주노 역시 초기엔 '영턱스클럽'을 프로듀싱하며 잘나가는 듯했지만 사기, 성추행 혐의 등에 휘말려 사라졌다.

서태지만이 유일하게 활동이 가능하지만, 그 역시 2017년 BTS와의 콘서트 이후 대중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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